강묘금도위두剛卯金刀威斗, 강무講武, 강무고실羌無故實, 강문통江文通, 강미천지회糠眯天地晦
❍ 강묘금도위두[剛卯金刀威斗] 강묘(剛卯)는 한대(漢代) 사람들이 벽사(辟邪)를 위해 만들어 패용하는 기물이다. 정월(正月)의 묘일(卯日)에 만드는데, 쇠나 옥 혹은 복숭아 나무를 재료로 만들고 벽사의 글귀를 새긴다. 왕망은 “유씨는 묘금도로 만들어졌으므로, 정월에 강묘를 만들어 차거나, 쇠로 만든 화폐의 편리함을 모두 시행해선 안된다.[夫劉之爲字卯金刀也 正月剛卯 金刀之利 皆不得行]”라고 하고서 신하들에게 논의하게 하니, 모두가 옳다고 하므로 화폐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혁하였다. 왕망(王莽)이 새로운 화폐 화포(貨布)와 화천(貨泉)을 만들었는데, 화천을 파자(破字)하면 ‘백수진인(白水眞人)’이 된다. 이는 공교롭게도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가 백수향(白水鄕) 출신으로 왕망이 백수진인에게 멸망당하리라는 당시의 참언에 모두 들어맞았다고 한다. 왕망이 즉위한 후에 잦은 화폐개혁으로 백성의 삶이 피폐해지고, 제도와 정령이 번다하여 사방이 온통 시끄러워 한나라를 사모하는 정서가 만연하였다. 게다가 기근이 연달아 반란군이 창궐하자, 왕망은 5섬(石)의 구리로 북두성 모양의 위두(威斗)라는 기물을 만들어 반란군을 진압하고자 하여 출입할 때 늘 등에 지고 수행하도록 하였다. 한나라 병사가 궁궐에 들이닥칠 때에도 왕망은 자리를 돌면서 위두의 자루를 따라 앉아 “하늘이 나에게 덕을 베풀었으니, 한나라 병사가 나를 어쩌랴.”라고 외치다가 점대(漸臺)에서 참수되어 시체가 갈기갈기 찢겼다. <漢書 卷99 王莽傳>
❍ 강무[講武] 임금이 사냥이나 또는 군사 연습을 하는 것을 강무(講武)라고 한다. 주로 농한기를 이용하여 군사 훈련을 목적으로 임금이 친림(親臨)한 가운데 실시하던 수렵대회이다. 장희백(臧僖伯)이 노(魯)나라 은공(隱公)에게 간하는 내용에 임금이 해마다 해야 할 일을 열거하였다. 그중에 각 계절에 따른 사냥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그 사냥은 농사일이 바쁘지 않은 틈과 짐승의 생육(生育)을 해치지 않는 시기를 택해서 군사 연습을 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 강무고실[羌無故實] 시문에 전고를 사용하지 않거나, 쓰인 표현이 출처가 없는 것을 가리킨다. 남조(南朝) 양(梁)나라 때의 종영(鍾嶸)의 시품(詩品)에 “‘맑은 새벽에 언덕머리에 오르다.’라는 시구는 전혀 고실이 없다.[清晨登隴首 羌無故實]”라고 하였다.
❍ 강문통[江文通] 문통은 남조(南朝) 때 양(梁)나라의 문인(文人) 강엄(江淹)의 자이다. 그는 젊어서 문장으로 이름을 날리고 유학(儒學)·도학(道學)·불경(佛經)에 두루 통하였다. 그는 문장을 잘 지었는데, 특히 한부(恨賦)와 별부(別賦)를 통해 당대의 혼란한 현실을 드러내었다. 한부(恨賦)는 위로는 황제·왕후·장군으로부터 아래로는 재자(才子)·가인(佳人)·서민·천민에 이르기까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결국 모두 원한을 품고 통곡 속에서 생을 마감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文選 卷16>
❍ 강미천지회[糠眯天地晦] 외물(外物)이 마음속에 들어오면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본성(本性)을 잃게 됨을 비유한 말이다. 장자(莊子) 제14편 천운(天運)에, 노담(老聃)이 공자(孔子)에게 “무릇 키질하다 날린 겨가 눈에 들어가게 되면 천지 사방이 자리가 뒤바뀌어 분간할 수 없게 되고, 모기나 등에가 살을 물면 밤새 잠들지 못하지요. 저 인의(仁義)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무자비하게 해독을 끼쳐서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니 천하를 어지럽힘이 이보다 큰 것이 없습니다.[夫播穅眯目, 則天地四方易位矣. 蚊虻噆膚, 則通昔不寐矣. 夫仁義憯然, 乃憒吾心, 亂莫大焉.]”라고 한 데서 보인다.
❍ 강민표[江民表] 송(宋)나라 목주(睦州) 사람 강공망(江公望)으로, 민표(民表)는 그의 자이다. 진사로 급제하여 휘종(徽宗) 때 좌사간(左司諫)으로 상소(上疏)하여 시정에 대해 극론했다. 행의(行誼)와 풍절(風節)로 명망이 있었고, 이정(二程)에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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