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녀江女, 강녀묘姜女廟, 강녀탑액姜女榻額, 강년强年, 강년불영降年不永
❍ 강녀[江女] 복희씨(伏羲氏)의 딸 복비(宓妃)를 말하는데, 낙수(洛水)에서 익사하여 수신(水神)이 되었다고 한다.
❍ 강녀묘[姜女廟] 허맹강(許孟姜)을 모신 사당이다. 강녀(姜女)는 허맹강(許孟姜)으로, 그 남편은 동관(潼關) 사람 범칠랑(范七郞)이다. 진시황(秦始皇) 때 만리장성을 축조하는 데 동원되어 남편이 죽자, 강녀가 그 시신을 찾아 성 밑까지 가서 울다 죽었다는 전설을 토대로 조성한 사당이다.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망부대(望夫臺) 정녀사(貞女祠)에서 월사의 서악묘(西嶽廟) 시에 차운하다[望夫臺貞女祠 次月沙西嶽廟韻]’라는 시의 서문[幷序]에 “세상에 전하는 말에 의하면, 진(秦)나라가 장성(長城)을 쌓을 적에 범랑(范郞)이라는 역도(役徒)가 이 역사 중에 죽었다. 그런데 그의 아내 허씨(許氏)가 남편과 헤어진 지 오래되어 남편이 죽은 줄을 알지 못하고 직접 와서 찾아보니, 남편은 이미 죽어 해도(海島)에 장례한 뒤였다. 허씨는 망부대 위에서 남편을 위해 곡하다가 마침내 그 자리에서 죽어 돌아가지 못했는데, 뒤에 산해관 주사(山海關主事) 장동(張棟)이 이 대에 사당을 세우고 장시현(張時顯)이 비문을 지어 비를 세웠다.[世傳, 秦築長城, 役徒有范郞者死於役. 其妻許氏久別, 不知其死, 親自來尋, 則夫已死, 葬在海島. 許哭夫於臺上, 遂死不還. 後山海關主事張棟, 立祠於臺, 張時顯撰碑.]”라고 보인다. <백사별집白沙別集 제5권 조천록 상朝天錄上> 허씨는 본래의 성이 강(姜)이므로 곧 맹강(孟姜)을 가리킨 것이다.
❍ 강녀탑액[姜女榻額] 강녀묘액(姜女廟額). 강녀묘(姜女廟)의 편액(扁額). 강녀(姜女)는 허맹강(許孟姜)으로, 그 남편은 동관(潼關) 사람 범칠랑(范七郞)이다. 진시황(秦始皇) 때 만리장성을 축조하는 데 동원되어 남편이 죽자, 강녀가 그 시신을 찾아 성 밑까지 가서 울다 죽었다는 전설을 토대로 사당이 조성되었다.
❍ 강년[强年] 나이 사십(四十)을 이른다. 예기(禮記) 곡례 상(曲禮上)에 “나이 사십이 되면 강이라 하니, 이때부터 벼슬길에 나아가기 시작한다.[四十曰强而仕]”라는 말이 나온다.
❍ 강년불영[降年不永] 정관정요(貞觀政要)에 “주(周)나라는 선을 힘쓰고 공과 덕을 쌓아 800년의 기틀을 보전할 수 있었고, 진(秦)나라는 사치와 음란을 방자하게 하고 형벌을 시행하기 좋아하다가 2세(世)를 넘기지 못하고 멸망하였으니, 어찌 선을 행하는 자는 복조(福祚)가 연장되고 악을 행하는 자는 년수(年數)를 내려줌이 길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然周則惟善是務, 積功累德, 所以能保八百之基. 秦乃恣其奢淫, 好行刑罰, 不過二世而滅. 豈非爲善者, 福祚延長. 爲惡者, 降年不永.]”라고 한 데서 보인다. 서경(書經) 상서(商書) 고종동일(高宗彤日)의 “년수(年數)를 내려줌이 길기도 하고 길지 않기도 하다.[降年有永有不永]”에서 유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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