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숙사자敢肅使者, 감승甘蠅

감숙사자[敢肅使者]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성공(成公) 16년 조에 보인다. 당시 진()나라와 초()나라가 언릉(鄢陵)에서 전투를 치르던 와중에 진나라 장수 극지(卻至)가 초 공왕(楚共王)의 친병(親兵)을 세 차례나 맞닥뜨렸다. 그런데 극지는 그때마다 반드시 병거에서 내려와 투구를 벗고 질풍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이에 초 공왕이 공윤(工尹) ()을 사자로 보내 극지에게 활을 선물로 주면서 전투가 격렬한 때에 붉은 숙피(熟皮)로 지은 융복(戎服)을 입은 이가 있었으니, 이는 군자였다. 나를 보자마자 빨리 피하였으니, 혹시 부상하지나 않았는가?”라고 하며 감사함을 전하였다. 극지가 공윤 양을 접견할 때에 투구를 벗고 초 공왕의 명을 접수하며 군왕의 외신 극지가 우리 군주의 전쟁에 따라와서, 군왕의 명성과 위세를 힘입어 갑주를 입는 대열에 참여하였으므로 감히 군왕의 명을 절하고 받을 수 없습니다. 감히 고하건대, 군왕의 명을 받자오니 실로 불안해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전쟁 중이기 때문에 감히 사자에게 숙배를 할 뿐입니다.[君之外臣至, 從寡君之戎事, 以君之靈, 間蒙甲冑, 不敢拜命. 敢告不寧君命之辱. 爲事之故, 敢肅使者.]”라고 하고서 사자에게 세 번 숙배를 하고서 물러갔다. 숙배(肅拜)는 서서 몸을 약간 굽혀 두 손을 합쳐 가슴에 대고서 약간 아래로 내리는 것이다. 가장 가벼운 예절이다.

감승[甘蠅] 감승은 고대의 명사수로 이름난 사람으로, 그가 활을 당기기만 하면 길짐승이 넘어지고 날짐승이 떨어졌다 한다. 그의 제자 비위(飛衛)가 그에게 활 쏘는 법을 배워 스승보다 뛰어났고, 기창(紀昌)이 또 비위에게 비법을 배워 명사수가 되었다. 기창이 활쏘기를 배울 때 작은 것이 크게 보이고 희미한 것이 뚜렷하게 보인 뒤에 내게 오라.[視小如大, 視微如著, 而後告我.]”는 스승의 말에 따라 털끝에 서캐를 잡아매어 창문 사이에 드리워 두고 그것만 바라보았다. 날짜가 지날수록 차츰 크게 보이다가, 3년이 지나자 수레바퀴만큼이나 크게 보였다. 그때서야 활을 당겨 쏘아 서캐의 심장을 꿰뚫었는데, 서캐를 매단 털은 끊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貫蝨之心, 而懸不絶.] <列子 湯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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