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려자용剛戾自用, 강력인구强力忍垢, 강련江練, 강렵剛鬣, 강령江嶺, 강령綱領, 강령江令

강려자용[剛戾自用] 강려(剛戾)는 성미가 사납고 올곧지 않아 꼬여 있는 것이고, 자용(自用)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이다. , 강려자용(剛戾自用)은 성품이 억세고 비꼬여서 스스로의 지혜와 재능만 쓴다는 뜻으로,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멋대로 행동함을 이르는 말이다. 사기(史記) 6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시황의 사람됨은 천성이 고집이 세고 사납고 스스로 옳다고 여기며, 제후로 일어나 천하를 통일했으니 하고 싶은 대로 멋대로 하고 예로부터 자신을 따를 사람이 없다고 여기고 있다.[始皇為人, 天性剛戾自用, 起諸侯, 并天下, 意得欲從, 以為自古莫及己.]”라고 한 데서 보인다. 강퍅자용(剛愎自用).

강력인구[强力忍垢] 무리하게 힘쓰는 인물로 치욕도 참아낼 수 있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28편 양왕(讓王), ()이 무광(務光)에게 이윤(伊尹)에 대하여 묻자, 무광이 무리하게 힘쓰는 인물로 손에 때를 묻히는 것도 참아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 밖의 능력에 대해서는 나는 모릅니다.[强力忍垢, 吾不知其他也.]”라고 대답한 데서 보인다. 이윤(伊尹)의 사람됨이 오욕의 행위라도 기꺼이 참아낼 수 있음을 표현한 내용이다.

강련[江練] 남조(南朝) ()나라의 시인 사조(謝脁) 시 만등삼산환망경읍(晩登三山還望京邑)남은 노을 흩어져 비단을 이루고, 맑은 강은 깨끗하기 명주 같아라.[餘霞散成綺 澄江靜如練]”라는 명구가 있다. <文選 卷27 晩登三山還望京邑>

강렵[剛鬣] 제사 지낼 때의 희생인 돼지의 별칭이다. 돼지는 살찌고 모렵(毛鬣)이 억세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예기(禮記) 곡례하(曲禮下)종묘에 제사하는 예에 소를 일원대부(一元大武)라 하고, 돼지를 강렵이라 하고, 작은 돼지를 돌비(腯肥)라 한다.[凡祭宗廟之禮, 牛曰一元大武, 豕曰剛鬣, 豚曰腯肥.]”라고 한 데서 보인다. 강렵(剛鬛).

강령[江嶺] 강남(江南)을 흔히 영외(嶺外)의 땅이라고 말하는데 이때의 ()은 대유령(大庾嶺)을 가리킨다. 대유령(大庾嶺)은 강서성(江西省) 대여현(大餘縣)과 광동성(廣東省) 남웅현(南雄縣)의 경계에 있다. 당대(唐代)에는 죄를 지은 사람들을 대부분 영외(嶺外)로 내쫓았다.

강령[綱領] 일의 으뜸이 되는 큰 줄기 또는 정당이나 단체의 취지·목적·행동 규범 따위의 원칙을 말한다.

강령[江令] 육조(六朝) 때 남조(南朝) () 나라의 문인(文人) 강엄(江淹)을 이른다. 강엄이 건안(建安) 오흥령(吳興令), 동무령(東武令) 등을 지냈으므로 강령(江令)이라 한다.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것을 슬퍼하는 시를 많이 읊었다.

강령[江令] 강령은 남조(南朝) () 나라 때의 상서령(尙書令)을 지낸 문학가 강총(江總)을 가리킨다. 옥계생시전주(玉谿生詩箋註) 2 대설(對雪)이미 강령을 따라 옥나무를 뽐내고 또 노가로 들어가 옥당을 시기하네.[已隨江令誇瓊樹 又入廬家妒玉堂]”라고 한 데서 보인다. 강총(江總)이 지은 시는 양무제(梁武帝)의 아낌을 받았고, 진후주(陳後主) 즉위 후 상서령(尙書令)이 되었으나 정무는 돌보지 않고 후주와 함께 후원에서 연회에만 골몰하면서 염정시를 써 서로간에 예의를 차리지 않는 극히 친밀한 손님이라는 뜻의 압객(狎客)으로 불렸다. 진나라가 망한 뒤 수()나라에서도 벼슬을 살다가 강도(江都)로 물러나 그곳에서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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