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講對, 강대强臺, 강대공降大功, 강도絳桃, 강도江都, 강도絳都, 강도서각지변江都西閣之變

강대[講對] 경전(經典)을 강하고 질문에 답변하는 것을 이른다.

강대[强臺] ()나라 영왕(靈王)이 지은 장화대(章華臺)를 말하는데, 형대(荊臺)라고도 하며, 호북성(湖北省) 감리현(監利縣) 서북쪽에 있다.

강대공[降大功] 대공복(大功服)으로 낮추어짐. 대공복(大功服)이란 사촌 형제자매·중손(衆孫중손녀(衆孫女중자부(衆子婦질부(姪婦), 남편의 조부모·백숙부모·질부 등의 겨레붙이의 상사(喪事)에 아홉 달 동안 입는 복제(服制)이다.

강대무비[强大無比] 비할 데 없이 강대(强大). 어떤 것에도 비교할 수 없이 강대함을 이른다.

강덕론[講德論] 왕포(王褒)의 사자강덕론(四子講德論)을 가리킨다.

강도[絳桃] 강도(絳桃)는 당나라 한유(韓愈)의 애첩 이름이다. 한유에게는 강도와 유지(柳枝)라는 두 애첩이 있었는데, 유지가 달아났다가 붙잡혀 돌아온 일이 있었다. 당어림(唐語林)에 의하면, 한유에게 강도와 유지 두 애첩이 있어 모두 가무를 잘했는데, 뒤에 유지가 담장을 넘어서 도망갔다가 가인(家人)에게 다시 붙들려 온 일이 있어, 한유가 진주초귀(鎭州初歸) 시에 이별한 이후로 길거리의 양류는, 춘풍에 하늘거리며 날려고만 했는데, 또한 작은 정원의 도리는 그대로 남아 있어, 낭군 오길 기다리며 꽃을 안 피우고 있었네.[別來楊柳街頭樹 擺弄春風只欲飛 還有小園桃李在 留花不發待郞歸]”라 하고, 그 후부터는 강도만 오로지 총애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강도[江都] 강화도(江華島). 강화(江華)의 다른 이름이다. 고려(高麗) 고종(高宗) 19(1232)에 몽고의 침입으로 도읍을 옮긴 후 원종(元宗) 11(1270)에 환도(還都)할 때까지 39년 동안 임시 수도로 삼아서 붙은 이름이다.

강도[絳都] 신선이 사는 궁전을 강궁(絳宮)이라 하니 강도는 신선이 사는 곳이다.

강도[江都] 강도는 지금의 강소성(江蘇省)으로, () 나라 양제(煬帝) 때의 서울이다. () 나라 고조(高祖)가 이곳에서 수 나라를 멸망시켰다.

강도서각지변[江都西閣之變] 강도(江都) 서각(西閣)의 변란. 수 양제(隋煬帝)가 우문화급(宇文化及)에게 시해된 사건을 이른다. 수서(隋書) 5 공제(恭帝)우둔위장군(右屯衛將軍) 우문화급(宇文化及)이 태상황(太上皇: 양제煬帝)을 강도궁(江都宮)에서 시해하였다.[右屯衛將軍宇文化及殺太上皇於江都宮]”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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