放言五首其三방언5수3 / 재목을 가리려면 / 白居易백거이
贈君一法決狐疑[증군일법결호의] 그대에게 의심 잘라낼 방법을 주리니
不用鑽龜與祝蓍[불용찬귀여축시] 거북점과 시초점은 볼 필요도 없다네
試玉要燒三日滿[시옥요소삼일만] 옥돌 시험하려면 온 삼일 달궈야하고
辨材須待七年期[변재수대칠년기] 재목을 가리려면 7년은 기다려야하네
周公恐懼流言日[주공공구류언일] 유언비어 떠돌 땐 주공도 두려워했고
王莽謙恭未簒時[왕망겸공미찬시] 왕위 찬탈 전에는 왕망도 겸손했다네
向使當初身便死[향사당초신편사] 만약 그 일 있기 전 그들이 죽었다면
一生眞僞復誰知[일생진위부수지] 그들의 일생 진위 어느 누가 알았겠나
幷序병서 : 원진(元稹)이 강릉(江陵)에 있을 때 방언(放言)이라는 장구 다섯 수를 지었다. 그 시운이 높고 시율은 격식을 갖추었으며, 시의는 예스러우나 시어는 참신하였다. 내가 매번 그 시를 읊을 때마다 그 맛을 깊이 음미했다. 비록 선배들 중에 시에 깊이 있는 자가 있었지만, 원진의 이런 시는 없었는데, 그나마 이기(李頎)의 시 잡흥(雜興)에 “제수는 절로 맑고 하수는 절로 탁해, 주공은 대성인에 접여는 광인이라.[濟水自淸河自濁 周公大聖接輿狂]”라고 한 시구만이 그에 가까웠다. 내가 심양의 보좌로 출임함에 아직 임지에 이르지 않았고 배 위에서도 한가했기에 강물 위에서 홀로 읊어 다섯 수를 엮어 원진의 뜻을 잇고자할 따름이다.[元九在江陵時, 有放言長句詩五首, 韻高而體律, 意古而詞新. 予每詠之, 甚覺有味, 雖前輩深於詩者, 未有此作. 唯李頎有云: ‘濟水自淸河自濁, 周公大聖接輿狂.’ 斯句近之矣. 予出佐潯陽, 未屆所任, 舟中多暇, 江上獨吟, 因綴五篇以續其意耳.] <放言 五首 幷序>
<放言五首其三방언5수3 / 재목을 가리려면 / 白居易백거이>
❍ 백거이[白居易] 당(唐)나라 때 시인으로 자는 낙천(樂天), 호는 향산거사(香山居士) 또는 취음선생(醉吟先生)이다. 조적(祖籍)은 산서(山西) 태원(太原)이고, 이백(李白)이 죽은 지 10년, 두보(杜甫)가 죽은 지 2년 후에 하남(河南) 신정(新鄭)에서 태어났다. 정원(貞元) 16년(800)에 진사가 되어, 벼슬은 소주(蘇州)·항주(杭州)의 자사를 거쳐 만년에 태자소부(太子少傅)에 지냈고, 형부상서(刑部尙書)로 치사(致仕)하였다. 향산(香山)에서 지내다가 세상을 뜬 뒤 낙양(洛陽) 남쪽 향산의 비파봉(琵琶峰)에 묻혔다. 시호는 문(文)이다. 세상 사람들이 백부(白傅) 또는 백문공(白文公)으로 불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5세 때부터 시 짓는 법을 배웠으며 15세가 지나자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하는 시재를 보였다 한다. 이백(李白), 두보(杜甫)와 더불어 당대3대시인(唐代三大詩人)으로, 같은 시대의 한유(韓愈)와 더불어 이두한백(李杜韓白)으로 병칭된다. 원진(元稹)과는 함께 신악부운동(新樂府運動)을 이끌어 원백(元白)으로, 유우석(劉禹錫)과는 유백(劉白)으로 병칭되며 당시 으뜸으로 쳤다. 백거이는 시의 제재가 광범위하고 형식이 다양하며 언어가 평이하고 통속적이어서 시마(詩魔) 또는 시왕(詩王) 등의 칭호를 얻었다. 그는 시론을 통해 자신의 시작의 첫째 목적은 겸제(兼濟)의 뜻을 살린 풍유(諷諭)에 있다고 현실주의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고, 스스로 자신의 시집을 편집하면서 시를 풍유시(諷諭詩), 한적시(閑寂詩), 감상시(感傷詩), 잡률(雜律詩)의 네 종류로 분류하였다. 만년에는 세상일에 대하여 고민하고 방황한 끝에 한적을 좋아하는 태도로 발전한다. 저서에 백씨장경집(白氏長慶集)·백씨육첩사류(白氏六帖事類) 등이 전한다. 장한가(長恨歌), 매탄옹(賣炭翁), 비파행(琵琶行) 등을 대표적인 시로 꼽는다.
❍ 원구[元九] 원(元)씨 집안의 아홉 번째 아들, 곧 원진(元稹).
❍ 방언[放言] 거리낌이 없이 함부로 말함. 또는 그 말. 나오는 대로 말함. 세상일을 이야기하지 않다. 거침없이 말함. 나오는 대로 무책임하게 지껄이는 말.
❍ 호의[狐疑] 의심하다. 의심이 많다. 여우가 의심이 많다는 뜻으로, 매사에 깊이 의심함을 이르는 말.
❍ 호의불결[狐疑不決] 여우는 의심이 많아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어떤 일에 대하여 의심하여 머뭇거리고 결행하지 못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호의미결(狐疑未決)이라고도 한다. 진(晉) 나라 때 곽연생(郭緣生)이 지은 술정기(述征記)에 “황하(黃河)의 나루터인 맹진(盟津)과 하진(河津)은 겨울에 강이 얼면 얼음의 두께가 몇 장이나 되어 수레가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얼음이 얼기 시작할 때는 섣불리 건너지 못하고 여우를 먼저 건너가게 하였다. 여우는 귀가 밝아서 얼음 밑에서 물소리가 나면 가다 말고 되돌아왔다. 여우가 무사히 강을 다 건너가면 사람들이 비로소 안심하고 수레를 출발하였다.”고 하였다. 또, 초(楚) 나라의 굴원(屈原)은 이소(離騷)에서 “머뭇거리고 여우처럼 의심하는 내 마음이여, 스스로 가고파도 갈 수가 없네.[心猶豫而狐疑兮, 欲自適而不可]”라고 읊었다. 또, 후한서(後漢書)의 유표전(劉表傳)에 “원소(袁紹)가 조조(曺操)와 대치하고 있을 때 유표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이때, 유표는 여우처럼 의심하여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한숭(韓嵩)을 조조에게 보내어 허와 실을 살피도록 하였다.[表狐疑不斷, 乃遣嵩詣操, 觀望虛實.]”라고 하였다.
❍ 찬귀[鑽龜] 거북점. 거북의 등껍질을 뚫어 그 균열로 길흉을 점친다.
❍ 왕망[王莽] 서한(西漢) 말 왕망(王莽)은 대사마(大司馬)로 있으면서 두 차례 사임하여 권력과 이권에 뜻이 없음을 나타내었으나, 결국 쇠약해진 한 왕실(漢王室)을 찬탈하여 신(新)나라 세웠다.
❍ 시옥요소삼일만[試玉要燒三日滿] 백거이의 자주(自注)에 “진짜 옥은 삼일동안 불에 넣어도 타거나 뜨거워지지 않는다.[眞玉燒三日不熱]”고 하였고, 회남자(淮南子) 숙진훈(俶眞訓)에 “종산의 옥은 숯화로에 가열하여 삼일 밤낮이 되어도 색채나 광택이 변하지 않는다.[鍾山之玉, 炊以爐炭, 三日三夜而色澤不變.]”고 하였다.
❍ 변재수대칠년기[辨材須待七年期] 백거이의 자주(自注)에 “예장(豫章: 녹나무)은 재목으로 쓰려면 7년을 기다려야 한다.[豫章木, 生七年而後知.]”고 하였다. 豫章:枕木和樟木. <史記. 司馬相如傳>:“其北則有陰林巨樹楩楠豫章.” <正義>:“豫:今之枕木也;樟, 今之樟木也. 二木生至七年, 枕樟乃可分別.”
❍ 겸공[謙恭] 자기를 낮추고 다른 사람을 높이는 태도가 있음. 남을 높이고 자기(自己)를 낮춤을 뜻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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