放言五首其一방언5수1 / 조석으로 바뀌는 진위 / 白居易백거이
朝眞暮僞何人辨[조진모위하인변] 조석으로 진위 바뀜 누가 분별하랴
古往今來底事無[고왕금래저사무] 예부터 지금까지 그친 일이 없나니
但愛臧生能詐聖[단애장생능사성] 성인 사칭 장생의 능함만 좋아하고
可知寗子解佯愚[가지영자해양우] 우매한 척 영자의 통달은 모른다네
草螢有耀終非火[초형유요종비화] 풀잎에 반딧불이 결국 불이 아니고
荷露雖團豈是珠[하로수단개시주] 연잎 이슬 둥글어도 어찌 진주이랴
不取燔柴兼照乘[불취번시겸조승] 섶도 못 사르고 수레도 못 비추나니
可憐光彩亦何殊[가련광채역하수] 가련하다 그 광채 무엇이 특별한가
幷序병서 : 원진(元稹)이 강릉(江陵)에 있을 때 방언(放言)이라는 장구 다섯 수를 지었다. 그 시운이 높고 시율은 격식을 갖추었으며, 시의는 예스러우나 시어는 참신하였다. 내가 매번 그 시를 읊을 때마다 그 맛을 깊이 음미했다. 비록 선배들 중에 시에 깊이 있는 자가 있었지만, 원진의 이런 시는 없었는데, 그나마 이기(李頎)의 시 잡흥(雜興)에 “제수는 절로 맑고 하수는 절로 탁해, 주공은 대성인에 접여는 광인이라.[濟水自淸河自濁 周公大聖接輿狂]”라고 한 시구만이 그에 가까웠다. 내가 심양의 보좌로 출임함에 아직 임지에 이르지 않았고 배 위에서도 한가했기에 강물 위에서 홀로 읊어 다섯 수를 엮어 원진의 뜻을 잇고자할 따름이다.[元九在江陵時, 有放言長句詩五首, 韻高而體律, 意古而詞新. 予每詠之, 甚覺有味, 雖前輩深於詩者, 未有此作. 唯李頎有云: ‘濟水自淸河自濁, 周公大聖接輿狂.’ 斯句近之矣. 予出佐潯陽, 未屆所任, 舟中多暇, 江上獨吟, 因綴五篇以續其意耳.] <放言 五首 幷序>
<放言五首[其一]방언5수1 / 조석으로 바뀌는 진위 / 白居易백거이>
❍ 백거이[白居易] 당(唐)나라 때 시인으로 자는 낙천(樂天), 호는 향산거사(香山居士) 또는 취음선생(醉吟先生)이다. 조적(祖籍)은 산서(山西) 태원(太原)이고, 이백(李白)이 죽은 지 10년, 두보(杜甫)가 죽은 지 2년 후에 하남(河南) 신정(新鄭)에서 태어났다. 정원(貞元) 16년(800)에 진사가 되어, 벼슬은 소주(蘇州)·항주(杭州)의 자사를 거쳐 만년에 태자소부(太子少傅)에 지냈고, 형부상서(刑部尙書)로 치사(致仕)하였다. 향산(香山)에서 지내다가 세상을 뜬 뒤 낙양(洛陽) 남쪽 향산의 비파봉(琵琶峰)에 묻혔다. 시호는 문(文)이다. 세상 사람들이 백부(白傅) 또는 백문공(白文公)으로 불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5세 때부터 시 짓는 법을 배웠으며 15세가 지나자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하는 시재를 보였다 한다. 이백(李白), 두보(杜甫)와 더불어 당대3대시인(唐代三大詩人)으로, 같은 시대의 한유(韓愈)와 더불어 이두한백(李杜韓白)으로 병칭된다. 원진(元稹)과는 함께 신악부운동(新樂府運動)을 이끌어 원백(元白)으로, 유우석(劉禹錫)과는 유백(劉白)으로 병칭되며 당시 으뜸으로 쳤다. 백거이는 시의 제재가 광범위하고 형식이 다양하며 언어가 평이하고 통속적이어서 시마(詩魔) 또는 시왕(詩王) 등의 칭호를 얻었다. 그는 시론을 통해 자신의 시작의 첫째 목적은 겸제(兼濟)의 뜻을 살린 풍유(諷諭)에 있다고 현실주의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고, 스스로 자신의 시집을 편집하면서 시를 풍유시(諷諭詩), 한적시(閑寂詩), 감상시(感傷詩), 잡률(雜律詩)의 네 종류로 분류하였다. 만년에는 세상일에 대하여 고민하고 방황한 끝에 한적을 좋아하는 태도로 발전한다. 저서에 백씨장경집(白氏長慶集)·백씨육첩사류(白氏六帖事類) 등이 전한다. 장한가(長恨歌), 매탄옹(賣炭翁), 비파행(琵琶行) 등을 대표적인 시로 꼽는다.
❍ 원구[元九] 원(元)씨 집안의 아홉 번째 아들, 곧 원진(元稹).
❍ 방언[放言] 거리낌이 없이 함부로 말함. 또는 그 말. 나오는 대로 말함. 세상일을 이야기하지 않다. 거침없이 말함. 나오는 대로 무책임하게 지껄이는 말.
❍ 고왕금래[古往今來] 옛날부터 지금까지. 예로부터 지금까지.
❍ 저사[底事] 무슨 일. 어떤 일. 어찌하여. 무엇하러.
❍ 장생[臧生] 장생은 곧 춘추 시대의 장무중(臧武仲)을 이른다. 노나라의 대부로 장문중(臧文仲의 손자인 장손흘(臧孫紇)이다. 무(武)는 시호이고 중(仲)은 그의 항렬이다. 그는 당시 세인들로부터 성인이라는 불렸지만 그 속내는 노나라 제후를 끼고 국사를 농단하려 했다. 그러나 공자는 그의 간사함을 파악하고 배척하였다.
❍ 영자[甯子] 영무자(甯武子). 춘추 시대 위(衛)나라 대부로 이름은 유(兪)이다. 성공(成公)이 무도(無道)하여 나라를 잃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남들은 다 그 어려운 상황을 회피했으나 영무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힘을 다해 마침내 자신도 살고 임금도 구제하였다. 공자가 “영무자는 나라에 도가 있을 때는 지혜롭고 나라에 도가 없을 때는 어리석었으니, 그 지혜는 따를 수 있을지라도 그 어리석음은 따를 수 없다.”고 칭송하였다. <論語 公冶長>
❍ 영자[寧子] 영무자(寧武子), 영자(寧子). 영생(寧生). 영무(寧武). 영유(寧兪). 춘추 시대 위(衛)나라 사람. 위문공(衛文公)과 성공(成公) 때 대부(大夫)를 지냈다. 이름은 유(兪)고, 무자는 시호(諡號)다. 성공이 무도하여 진(晉)나라가 공격해오자 나라를 잃고 초(楚)나라와 진(陳)나라로 달아났다가 결국 진후(晉侯)에게 사로잡혔다. 그가 어려움을 무릅쓰고 여러 가지로 주선하여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나라에 도(道)가 행해질 때는 지혜(智慧)를 발휘하고, 어지러울 때는 어리석은 체하여 몸을 잘 보전했다고 공자(孔子)가 평했다.
❍ 종비[終非] 결국 ~은 아니다.
❍ 개시[豈是] 어찌 ~하겠는가,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 ~이란 말인가
❍ 번시[燔柴] 제사 때 태우는 땔감, 섶나무를 태움. 나무를 태워 불을 놓고 하늘에 제사[天祭]를 지내는 것. 섶 위에 옥백(玉帛)과 희생(犧牲)을 올려놓고 이를 태우면서 천제(天祭)를 지내는 일.
❍ 조승[照乘] 광채가 멀리 비쳐 수레 여러 채의 앞을 밝힐 수 있는 구슬. 전국 시대에 제 위왕(齊威王)과 위 혜왕(魏惠王)이 회동했을 때, 위 혜왕이 제 위왕에게 말하기를 “과인(寡人)의 나라는 비록 작으나, 차량(車輛)을 앞뒤로 각각 12승(乘)을 환히 비출 수 있는 경촌(徑寸)의 구슬이 10매(枚)나 있습니다.”라고 하니, 제 위왕이 자신은 훌륭한 신하들을 보배로 여길 뿐, 구슬을 보배로 여기지 않는다고 대답한 데서 온 말이다.
❍ 역하[亦何] 어째서.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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