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과부질干戈斧鑕, 간과일심干戈日尋, 간과지제干戈之際, 간과집호피干戈戢虎皮

간과미식수신행[干戈未息戍申行] 백성들이 변방을 지키기 위하여 계속 동원되는 것을 가리킨 것이다. () 나라가 주() 나라 평왕(平王)의 모가(母家)였는데, () 나라와 가까워 자주 침략을 받자, 평왕이 기내(畿內) 백성들을 동원하여 신 땅을 지키게[戍申] 하였으므로, 수자리 사는 백성들이 이를 원망하여 시경(詩經) 왕풍(王風)의 양지수(揚之水)라는 시를 지어 불렀다고 한다.

간과부질 미상유소사대[干戈斧鑕 未嘗有所私貸] 간과(干戈)는 방패와 창으로 병기(兵器)를 이르고, 부질(斧鑕)은 도끼와 모루로 형벌하는 기구를 이른다. 사대(私貸)는 개인의 사사로운 용도로 씀을 이른다. 소식(蘇軾)의 신규각비(宸奎閣碑)공손히 생각하건대 인종황제(仁宗皇帝)께서는 재위하신 42년 동안 일찍이 승니(僧尼)들을 많이 출가시키고 사찰을 크게 꾸미고 높이지 않으셨으며, 창과 방패와 형벌하는 도끼들을 일찍이 사사로이 쓰신 적이 없었으나, 승하하시던 날에 천하 사람들이 인군(仁君)이라고 허여하였다. 이것은 이른바 부처의 심법(心法)을 얻었다는 것이니, 이는 고금에 우리 인종황제(仁宗皇帝) 한 분뿐이시다.[恭惟仁宗皇帝, 在位四十二年, 未嘗廣度僧尼, 崇侈寺廟, 干戈斧鑕, 未嘗有所私貸, 而升遐之日, 天下歸仁焉. 此所謂得佛心法者, 古今一人而已.]”라고 한 데서 보인다.

간과일심 전쟁불식[干戈日尋 戰爭不息] 창과 방패가 날마다 이어져 전쟁이 끊이지 않음. 간과일심(干戈日尋)과 전쟁불식(戰爭不息)은 기본적으로 같은 뜻이다. 곧 전쟁이 종식되지 않은 내용을 구체적으로 형용한 것이 간과일심(干戈日尋)이다. ()은 식()과 같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 원년(元年)옛날 고신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들은 알백이고 작은 아들은 실침이다. 두 사람은 광림에서 살았는데, 서로 친목하지 못하고 창과 방패가 날마다 이어져 서로 공격하였다.[, 高辛氏有二子, 伯曰閼伯, 季曰實沈. 居于曠林, 不相能也, 日尋干戈, 以相征討.]”는 말이 있다.

간과지제[干戈之際] 전란 시기를 가리킨다. 구양수(歐陽脩)의 풍락정기(豐樂亭記)저주(滁州)는 전쟁이 빈발하던 오대(五代) 시절에 전투가 벌어졌던 땅이다. 옛날 태조황제(太祖皇帝)가 일찍이 후주(後周)의 군대를 이끌고 청류산(淸流山) 아래에서 이경(李景)의 병사 15만 명을 격파하고서 그 장수 황보휘(皇甫暉)와 요봉(姚鳳)을 저주 동문(東門) 밖에서 사로잡아 마침내 저주를 평정하였다.[滁於五代干戈之際, 用武之地也. 昔太祖皇帝, 嘗以周師, 破李景兵十五萬於淸流山下, 生擒其將皇甫暉姚鳳於滁東門之外, 遂以平滁.]”라고 한 데서 보인다. 저주(滁州)는 오대(五代) 시기에 처음에는 남당(南唐)에 소속되었다가 후에는 후주(後周)로 편입되었다. 이 지역은 강회(江淮)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이 지역을 두고 후주와 남당 사이에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

간과집호피[干戈戢虎皮] 창과 방패를 호피(虎皮)로써 쌈. 무력의 사용을 중지한다는 뜻이다. 예기(禮記) 악기(樂記)황하를 건너 서쪽으로 가셔서는 군마를 화산(華山)의 남쪽에 흩어 다시 타지 않았으며, 소를 도림(桃林)의 들에 흩어 다시 일을 시키지 않았으며, 수레와 갑옷을 피를 발라 부고(府庫)에 보관하여 다시는 사용하지 않았으며, 창과 방패를 거꾸로 수레에 싣고 호피(虎皮)로써 싸고서 이름하기를 건고(鍵櫜)라 하였으며, 군대의 장수들을 제후가 되게 하시니, 이렇게 한 뒤에 천하에서는 무왕(武王)이 다시는 군대를 사용하지 않을 줄을 알게 되었다.[濟河而西, 馬散之華山之陽而弗復乘, 牛散之桃林之野而弗復服, 車甲衅而藏之府庫而弗復用, 倒載干戈, 包之以虎皮, 名之曰建櫜. 將帥之士, 使爲諸侯, 然後天下知武王之不復用兵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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