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경看經, 간경하사干卿何事, 간계소지澗谿沼沚, 간계지난乾谿之難

간경[看經] 불경을 소리 내지 않고 속으로 읽음. ()나라 선승(禪僧) 약산 유엄(藥山惟儼)이 불경을 보고 있을[看經] 적에, 어떤 승려가 묻기를 화상께선 남에겐 불경을 보지 못하게 하시면서 혼자서는 왜 불경을 보십니까?”라고 하자, “나는 그저 남의 눈을 가리려고 할 따름이다.[我只圖遮眼]”라고 대답하였는데, 그 승려가 다시 저도 화상을 본받고 싶은데 되겠습니까?”라고 하자, “그대라면 쇠가죽도 뚫어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대답한 일화가 전한다. <景德傳燈錄 卷14>

간경하사[干卿何事]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을 비웃을 때 쓰는 말이다. 오대(五代) 남당(南唐)의 제2대 황제인 원종(元宗) 이경(李璟)이 재상 풍연사(馮延巳)의 시 알금문(謁金門)바람 건듯 불어와 봄 연못에 잔잔한 물결 일으킨다.[風乍起, 吹皺一池春水.]”는 구절을 보고, 풍연사에게 봄 연못에 잔물결 이는 것이 경과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吹皺一池春水, 干卿何事.]”라고 놀려 댔다. 그러자 풍연사도 이경(李璟)의 시 산화자(山花子)를 거론하며 폐하께서도 보슬비에 꿈을 깨니 닭 울음소리 변방에 아득하고, 작은 누대에 울려 대는 옥피리 소리 차가워라.[細雨夢回鷄塞遠, 小樓吹徹玉笙寒.]’라고 읊지 않으셨습니까?”라고 받아넘겼다는 이야기가 남당서(南唐書) 풍연사(馮延巳傳) 나온다. 간경심사(干卿甚事), 간경저사(干卿底事), 저사간경(底事干卿)라고도 한다.

간경회[看經會] 불경(佛經)을 소리 내지 않고 속으로 읽던 독경(讀經)의 모임이다.

간계소지[澗谿沼沚] 시내와 연못 따위를 이른다. (谿)도 간()인데, 산골 도랑이다. ()는 연못이고, ()는 작은 저수지(渚水池)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은공(隱公) 3년 기사에 참으로 이 마음이 명백하고 신실하기만 하다면, 산골 도랑이나 늪가에 난 풀, 개구리밥, 흰쑥, 조류(藻類)와 같은 변변치 못한 나물, 투박한 대광주리와 솥 같은 기물(器物), 웅덩이에 잠겨 있거나 길에 고인 빗물도 귀신에게 올릴 수 있고 왕공에게 바칠 수 있는 것이다.[苟有明信, 澗溪沼沚之毛, 蘋蘩薀藻之菜, 筐筥錡釜之器, 潢汙行潦之水, 可薦於鬼神, 可羞於王公.]”라고 한 데서 보인다.

간계지난[乾谿之] 건계지난. 건계(乾谿)는 춘추 시대 초()나라의 땅인 안휘성(安徽省) 박현(亳縣)에 있는 지명이다. 초 영왕(楚靈王)이 사치하여 이곳에다 장화대(章華臺)를 건설하고는 죄인들이 장화대로 도망해 들어오면 잡지 못하게 하였으며, 자신이 죽인 사람의 아들에게 국도(國都)의 수비를 맡기기도 하였다. 초 영왕이 정사를 버려둔 채 자주 놀러 나가자 윤자혁(尹子革)이 자주 간하니, 영왕이 깨닫고는 3일 동안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영왕은 끝까지 이 결심을 지키지 못하고 건계의 대에서 방탕하게 놀다가 자신의 동생인 공자(公子) ()의 반란을 일으켜 국도를 함락시키자, 산속을 방황하며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내가 남의 자식을 죽였으니 화를 면할 수 있겠는가.”라 하고는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春秋左氏傳 昭公13><國語 楚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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