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로羯虜, 갈로삼희葛盧三犧, 갈롱葛籠, 갈뢰曷懶, 갈료근성獦獠根性, 갈룡葛龍

갈로[羯虜] 고대 부족으로 일찍이 흉노(匈奴)에 예속되어 있다가 위()나라와 진()나라 때에는 상당군(上黨郡)에 흩어져 살았는데, 동진(東晉) 때 갈인(羯人) 석륵(石勒)이 황하(黃河) 유역에서 후조(後趙)를 세워 십육국(十六國)의 하나가 되었다.

갈로[葛老] ()나라 도사 갈홍(葛洪)으로, 자는 치천(稚川), 호는 포박자(抱朴子)이다. 세상에서 소갈선옹(小葛仙翁)이라 한다. 신선도양(神仙導養)의 술법을 좋아하여 연단술(煉丹術)을 정은(鄭殷)에게 배웠고, 교지(交趾)에서 단사가 난다는 말을 듣고 구하여 구루령(句漏令)이 되었다. 자질(子姪)을 이끌고 광주를 지나 나부산(羅浮山)에 이르러 단()을 연단하고, 이루어짐에 시해(尸解)했다고 한다.

갈로삼희[葛盧三犧] 갈로(葛盧)는 개갈로(介葛盧), 즉 춘추 시대 개국(介國)의 임금 이름이다. 그는 소의 말을 잘 이해하였다 한다. 그가 노()나라를 예방했을 때, 소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저 소는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세 마리 모두 희생(犧牲)으로 바쳐졌습니다. 저 소의 울음소리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是生三犧, 皆用之矣. 其音云.]라고 하였다. 노나라에서 확인해 보니 사실이었다고 한다. <春秋左氏傳 僖公 29>

갈롱[葛籠] 갈롱은 갈등롱(葛燈籠)으로 갈포(葛布)를 씌운 등롱(燈籠)이다. 남조(南朝) ()나라의 무제(武帝)가 너무도 청간(淸簡)하고 검소한 나머지 궁전의 벽 위에 칡으로 만든 등롱을 걸어 놓았다.[壁上挂葛燈籠]”라는 고사가 전한다. () 무제(武帝)가 평소 거처하던 음실(陰室)을 헐고 그곳에 옥촉전(玉燭殿)을 세우게 되어 군신이 함께 가서 둘러보았는데, 침상 머리에는 토장(土鄣)이 있고, 벽에는 갈등롱(葛燈籠)과 마승불(麻蠅拂)이 걸려 있었다. 이것을 보고 시중(侍中) 원의(袁顗)가 황제의 검소한 덕을 칭송하자, 무제가 아무 답도 하지 않고는 혼잣말로 농사나 짓던 노인네가 이것을 얻은 것만도 과분한 일이지.[田舍公得此 以爲過矣]”라고 하였다 한다. <宋書 卷3 武帝紀下>

갈뢰[曷懶] 갈라. 땅 이름인데 지금 함경도 남북지대이다. 갈라전(曷懶甸)의 위치에 대해서는 함흥평야(咸興平野) 일대라는 설이 있으나, 대체로 길주(吉州) 이북(以北)에서 두만강 일대를 포괄하는 지역이었으며, 치소(治所)는 경성(鏡城)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갈료근성[獦獠根性] 갈료는 혜능(慧能)을 이른다. 영남(嶺南) 신주(新州) 출신의 혜능이 황매(黃梅)에 가서 오조(五祖) 홍인(弘忍)을 만나 문답을 나눌 적에, 홍인이 짐짓 영남 사람이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느냐고 묻자, 혜능이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어도 불성에는 본래 남북이 없다.[人雖有南北 佛性本無南北]”라고 대답하였는데, 이에 홍인이 이 오랑캐 근성이 대단히 날카롭구나.[這獦獠根性大利]”라고 말하고는 방아를 찧는 소임을 맡긴 고사가 전한다. 갈료(獦獠)는 남만(南蠻)과 같은 말이다.

갈룡[葛龍]갈피(葛陂)의 용으로 지팡이를 뜻한다. 후한(後漢) 때 비장방(費長房)이 약 파는 노인을 만나고서 집으로 돌아갈 때 노인이 대나무 지팡이 하나를 주면서 이것을 타면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는데, 도착해서는 반드시 갈피에 던져야 한다.”라고 하였다. 비장방이 과연 집으로 돌아와 갈피에 죽장을 던지니 변하여 용이 되었다 한다. <後漢書 卷82下 方術列傳 費長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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