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루感淚, 감류행지坎流行止, 감름坎廩, 감릉남북만상기甘陵南北謾相譏

감루[感淚] 감회의 눈물. 이현일(李玄逸)이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의 정충비(旌忠碑)를 지나면서 말에서 내려 재배(再拜)한 뒤에 지은 절구(絶句) 행장(行狀)남쪽에 세워진 천년의 빗돌, 그 위풍 만고토록 유구하네. 말을 멈추고 내려 절을 하자니, 감격의 눈물이 마구 쏟아지네.[南柱千年石 威風萬古長 停驂一下拜 感淚爲滂滂]”라고 하였다.

감류[坎流] 감류는 웅덩이를 만나면 멈추고 물결을 타면 흘러간다.”는 감지유행(坎止流行)의 준말로, 역순(逆順)의 환경에 따라 자신의 진퇴(進退)를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한서(漢書) 48 가의전(賈誼傳), () 나라 때 태부를 지낸 가의(賈誼)가 장사왕 태부(長沙王太傅)로 좌천되어 있으면서 지은 복조부(鵩鳥賦)흐름을 타면 흘러가고, 구덩이를 만나면 그친다.[乘流則逝兮 得坎則止]”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자신의 출처(出處)와 진퇴(進退)를 당시의 정황(情況)에 맞추어 한다는 뜻으로, ()은 험난(險難)을 뜻한 것으로, 즉 험난한 때를 만나서는 벼슬하지 않고 은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감류행지[坎流行止] 험난한 곳을 만나면 멈추고 흐름을 타면 행한다는 뜻의 감지유행(坎止流行)’을 도치시킨 표현으로, 환경의 역순(逆順)에 따라 진퇴(進退)와 행지(行止)가 일정하지 않았던 것을 가리킨다.

감름[坎廩] 감람(坎壈)과 같은 뜻으로, 매우 곤돈(困頓)하고 뜻을 얻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초사(楚辭) 구변(九辯)뜻을 얻지 못함이여, 빈한한 선비 실직하여 마음이 불편하도다. 신세가 적막함이여, 나그네로 떠도느라 친구 하나 없도다.[坎廩兮, 貧士失職而志不平. 廓落兮, 羇旅而無友生.]”라고 하였다.

감릉남북만상기[甘陵南北謾相譏] 후한(後漢) 환제(桓帝) 때 감릉 출신의 주복(周福)과 방식(房植)이 각각 남부(南部)와 북부(北部)로 나뉘어 상대방을 공격하였는데, 이것이 사대부가 당파를 세운 최초의 일로 전해진다. <後漢書 卷67 黨錮傳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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