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江口, 강구康衢, 강구격양康衢擊壤, 강구구가康衢謳歌, 강구민요康衢民謠

강구[江口] 강어귀. 강나루. 강과 강 또는 강과 바다가 만나 함께 흐르는 곳을 이른다. 경북 영덕군 남정면에 있는 장사(長沙) 인근의 지명이기도 하다.

강구[康衢] 사통오달(四通五達)의 큰 거리를 이른다. 이아(爾雅) 석궁(釋宮)사달(四達)의 길을 구()라 하고, 오달(五達)의 길을 강()이라 하고, 육달(六達)의 길을 장()이라 한다.[四達謂之衢, 五達謂之康, 六達謂之莊.]”고 하였고사기(史記) 맹자순경열전(孟子荀卿列傳)제나라 왕은 그들의 학설에 흡족하여, 순우곤 이하 모든 학자들에게, 모두 열대부라는 작위를 내리고, 번화하고 큰 길가의 네거리에 높은 문이 달린 커다란 집을 지어주고, 이들을 존경하고 총애하였다.[齊王嘉之, 自如淳於髡以下, 皆命曰列大夫, 爲開第康莊之衢, 高門大屋, 尊寵之.]”라고 하였다.

강구격양[康衢擊壤] 강구요(康衢謠)와 격양가(擊壤歌)로 모두 태평성대를 구가한 노래들이다. 강구(康衢)는 사통팔달(四通八達)의 큰 거리를 이른다. () 임금이 천하가 제대로 다스려지고 있는가를 살피기 위해 미복 차림으로 큰 거리로 나갔는데, 아이들이 우리 백성들에게 곡식을 먹임이 모두 임금님의 지극한 덕이니, 나의 지식 주장하여 아는 체하지 않고 오직 임금님 법칙 따르리라.[立我蒸民, 莫非爾極. 不識不知, 順帝之則.]”라고 노래하니, 요 임금이 듣고 기뻐하였다고 한다. <列子 仲尼> 격양가 또한 요 임금 때 어떤 노인이 땅을 두드리면서 불렀다는 노래로 해가 뜨면 나가서 일하고 해가 지면 들어가서 쉬도다. 우물 파서 물을 마시고 밭 갈아서 밥을 먹으니, 임금의 힘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으랴.[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何有於我哉?]”라는 내용인데, 이 역시 백성들이 자유롭게 살아가며 만족해하는 모습을 읊은 것이다. 만일 군주가 백성들에게 은덕을 베풀고 자신의 선정을 찬양하게 하면, 이를 명예를 요구하는 패자의 행위라고 한다. <論衡 藝增>

강구구가[康衢謳歌] 강구는 사통팔달(四通八達)의 큰길을 말한 것으로, 풍아익(風雅翼) 9에 의하면, 열자(列子)가 말하기를 요 임금이 천하를 다스린 지 50년에 천하가 잘 다스려지는지, 그렇지 못한지, 억조의 백성들이 자기 떠받들기를 원하는지, 원치 않는지를 알 수 없어, 미복 차림으로 사통팔달의 큰길에 나가서 동요를 들어 보니……우리 백성들을 성립시킨 것이 모두 임금의 덕이라, 백성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임금의 법칙을 따를 뿐이다.’ 하였다. [堯治天下五十年, 不知天下治與, 不治與, 億兆願戴己與, 不願戴己與, 乃微服遊於康衢, 聞童兒謠.……立我烝民, 莫非爾極. 不識不知, 順帝之則.]”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로, 전하여 태평성대의 구가를 의미한다.

강구민요[康衢民謠] 강구는 번화한 거리를 이른다. ()임금이 천하를 다스린 지 50년 만에 미복(微服) 차림으로 강구에 나가서 동요(童謠)를 들어 보니 우리 백성들을 성립시킨 것이 모두 임금의 덕이라, 백성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임금의 법칙을 따를 뿐이다.[立我烝民 莫非爾極 不識不知 順帝之則]”라 하였고, 한 노인(老人)은 배불리 먹고 배를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해 뜨면 나가서 일하고, 해 지면 들어가서 쉬노라.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밭 갈아서 농사지어 먹으니, 임금의 힘이 나에게 무슨 상관 있느냐.[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何有於我哉]”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로, 태평 시대의 구가(謳歌)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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