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원弇園, 감원紺園, 감원監院, 감원정鑑源亭, 감원하민敢怨下民, 감유심형坎維心亨

감원[弇園] 감원은 명() 나라 때 시문(詩文)으로 이름이 가장 높았던 왕세정(王世貞)을 이른다. 자가 원미(元美), 호는 봉주(鳳洲), 엄주산인(弇州山人)이다. 강소(江蘇) 태창(太倉) 사람으로 이반룡과 함께 후칠자 중 영향력이 가장 컸던 시인이다. 문학의 지론은 이반룡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글은 반드시 서한, 시는 반드시 성당이고, 대력 이후의 책은 읽지 말라.[文必西漢, 詩必盛唐, 大歷以後書勿讀.]”고 주장하였다.

감원[紺園] 감우(紺宇). 불교사원의 별칭으로 감전(紺殿)이라고도 한다. 검푸른 동산이라는 뜻으로 원래 사찰(寺刹)을 이른다.

감원[監院] 유걸원(流乞院)의 일을 맡아보는 사람이다. 유걸(流乞)은 이리저리 떠돌며 걸식함을 이른다. 유리걸식(流離乞食)하는 거지는 천하의 궁민(窮民)으로서 호소할 데가 없는 자이다. 어진 목민관은 마음을 다할 바이고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목민심서牧民心書 진황賑荒>

감원[甘願] 진심으로 원하다. 진심으로 바라다. 기꺼이 ~하려고 하다. 달갑게 ~하다.

감원정[鑑源亭] 경북 안동시 와룡면 가구리 대밭골[竹田洞]에 있는 정자로, 회곡(晦谷) 권춘란(權春蘭, 1539~1617)이 만년에 벼슬을 버리고 마을 어귀에 지은 뒤 물을 끌어 못을 만들고 감원정(鑑源亭)이라 하였으며, 여기서 소요하면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감원정이란 명칭은 주희(朱熹)의 시 관서유감(觀書有感)반 이랑 방당이 거울처럼 펼쳐지니, 하늘 빛 구름 그림자 그 안에서 배회하네. 묻노니 어이하여 그처럼 해맑을까? 근원에서 생수가 솟아나기 때문이지.[半畝方塘一鑑開, 天光雲影共徘徊. 問渠那得淸如許? 爲有源頭活水來.]”라고 한 데서 취한 것이다.

감원하민[敢怨下民] 감히 하민을 원망하랴. 시경(詩經) 빈풍(豳風) 치효편(鴟鴞篇)하늘이 궂은비를 내리기 전에 저 뽕나무 뿌리 껍질을 벗겨다가 우리집 출입문을 얽어두면 저 아래 사는 백성들이 누가 감히 우리를 넘보랴.[迨天之未陰雨 徹彼桑土 綢繆牑戶 今此下民 或敢侮予]”라고, 까치의 입장을 빌려 시인이 말하였다.

감유심형[坎維心亨] ()은 마음으로 형통한다. 주역(周易) 감괘(坎卦)습감은 신실함이 있어 마음으로 형통한다.[習坎有孚, 維心亨.]”라고 하였다. 감괘(坎卦) ()마음이 형통한 것은 바로 강중이기 때문이다.[維心亨, 乃以剛中也.]”라고 하였다. 또 전()감은 곧 험난(險難)의 뜻인데, 형통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험난한 데 처할수록 중심(中心)을 굳세게 갖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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