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적疳積, 감전酣戰, 감전귀척柑傳貴戚, 감전번화酣戰繁華

감적[疳積] 어린아이의 병. 어린아이가 젖이나 음식을 먹고 소화가 되지 않으면 감적증이 이루어지는데, 심한 경우는 엉덩이 부분이 불룩해지고 살이 바짝 마르고 배꼽이 튀어나오고 가슴이 팽팽해진다. 20세 이하에 나는 병을 감()이라 한다. 의종금감(醫宗金鑑)에 의하면 “15세 이상 때 나는 병은 노(), 15세 이하 때 나는 병은 모두 감()이라 한다.”고 하였다.

감전[酣戰] 격전(激戰)을 치르다. 두보(杜甫)의 시 단청인증조장군패(丹靑引贈曹將軍覇)포공과 악공의 모발도 흐트러져, 늠름하고 씩씩한 모습이 격전을 벌이고 있는 것 같네.[褒公鄂公毛髮動, 英姿颯爽來酣戰]”라고 하였고, 득사제소식(得舍弟消息) 시에 봉화 올리고 새로 한창 싸워 대니, 옛 혈흔에 다시 눈물 드리우노라.[烽擧新酣戰, 啼垂舊血痕.]”라고 하였다.

감전귀척[柑傳貴戚] 귀척전감[貴戚傳柑] 북송(北宋) 때 정월 대보름 밤에 궁중에서 근신(近臣)들에게 연회를 베풀어줄 때 귀척(貴戚)과 궁인(宮人)들이 감귤을 서로 선물로 주던 풍습이 있었다. 대보름 밤에 누각에 올라 귀척(貴戚)들이 관례적으로 황감(黄柑)을 서로 주고받았는데, 이것을 전감(傳柑)이라고 하였다. <古今事文類聚 前集 卷7 貴戚傳柑> 참고로, 소식(蘇軾)의 시 상원시음루상(上元侍飮樓上)돌아오니 한 점 가물거리는 등잔불 있는데, 그나마 아내에게 전해줄 황감이 있구나.[歸來一點殘燈在 猶有傳柑遺細君]”라고 하였다.

감전번화[酣戰繁華] 공자(孔子)의 제자 증자(曾子)가 자하(子夏)에게 살진 이유를 물으니, 자하가 내가 집에 들어가서 선왕의 의를 보면 이것이 좋고, 밖으로 나와서 부귀의 낙을 보면 또 이것이 좋았으므로, 양자가 나의 가슴속에서 싸우며 승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몸이 여위었는데, 지금은 선왕의 의가 이겼으므로 이렇게 살졌다.[吾入見先王之義則榮之 出見富貴之樂又榮之 兩者戰于胸中 未知勝負 故癯 今先王之義勝 故肥]”라고 답한 이야기가 한비자(韓非子) 유로(喩老)에 나오고, 자하(子夏)밖에 나가서는 번화한 문물들을 보고 좋아하고, 들어와서는 부자(夫子)의 도()를 듣고 좋아하여, 이 두 가지가 마음속에서 싸움을 벌이어 스스로 결단할 수가 없다.[出見紛華盛麗而説, 入聞夫子之道而樂, 二者心戰, 未能自決.]라고 고백한 말이 사기(史記) 23 예서(禮書)에 나온다. 참고로 소식(蘇軾)의 경산도중차운……(徑山道中次韻……) 시에 최근 몇 년 동안 분화와 싸웠는데, 점차 부자가 이기는 것을 느낀다.[年來戰紛華 漸覺夫子勝]”라고 표현한 구절이 보인다. <蘇東坡詩集 卷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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