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추불외양家醜不外揚, 가출모嫁出母, 가충賈充, 가충순욱賈充荀勗

가추불외양[家醜不外揚] 집안의 부끄러운 일은 밖에 드러내어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五燈會元><通俗編>

가출모[嫁出母] 가모(嫁母)와 출모(出母)의 합칭이다. 가모는 친모(親母)로서 부친이 죽은 뒤에 타인에게 재가한 모친을 말하고, 출모는 친모로서 부친으로부터 축출당한 자를 말하는데, 이들에게는 자식이 자최장기(齊衰杖期)에 심상삼년(心喪三年)의 복을 입었다.

가충[賈充] 중국 삼국시대 위진(魏晉) 교체기 때의 중신(重臣)이다. 자는 공려(公閭)이며 지금의 산서성 양분(襄汾) 동북쪽에 있었던 평양(平陽) 양릉(襄陵) 사람이다. 조위(曹魏)의 건국을 도왔던 가규(賈逵)의 아들이며 서진(西晉)의 개국 공신이다. ()나라 제4대 임금 고귀향공(高貴鄕公) 조모(曹髦)가 당시 재상이었던 사마소(司馬昭)를 공격하자 군사를 이끌고 이를 맞아 싸웠는데, 패색(敗色)이 짙을 무렵 향후의 거취를 묻는 태자사인(太子舍人) 성제(成濟)에게 사마소가 오늘을 위해 자신들을 길러주었으니 무엇을 의심할 것이 있느냐고 대답하여 성제를 독려하였다. 이에 성제가 고귀향공을 시해하였다. 이 일로 사마씨(司馬氏)의 신임을 얻었다. 뒤에 두 딸을 사마염(司馬炎: 진무제晉武帝)의 아우인 사마유(司馬攸)와 차자인 사마충(司馬衷: 진혜제晉惠帝)에게 출가시켜 사마씨와 인척을 맺으면서 더욱 현달한 지위를 갖게 되었다. ()나라가 건국된 뒤 거기장군(車騎將軍), 산기상시(散騎常侍), 상서복사(尙書僕射)에 보임되었으며, 사공(司空), 태위(太尉) 등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노군공(魯郡公)에 봉해졌다. 동오(東吳) 정벌을 반대하였으나 함녕(咸寧) 말 동오를 정벌할 때 대도독(大都督)으로서 6군을 통수하였다. 동오를 평정한 후 식읍 8천호를 받았다. 사후에 태재(太宰)로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무()이다. 열전이 진서(晉書) 40에 있다.

가충순욱[賈充荀勗] 가충(賈充)은 조위(曹魏)와 서진(西晉)의 대신으로 자는 공려(公閭)이고 평양(平陽) 양릉(襄陵) 사람이다. ()나라에서 예주자사(豫州刺史)를 지낸 가규(賈逵)의 아들로 서진(西晉)의 개국공신이다. ()나라 때에 대장군사마(大將軍司馬정위(廷尉) 등의 벼슬을 지냈으며, 사마씨(司馬氏) 일가의 심복신하로 사마염(司馬炎)이 위()나라 정권을 찬탈하는 것을 도왔다. ()나라가 건국된 뒤 진() 무제(武帝) 때에 사마(司馬시중(侍中상서령(尙書令)의 관직을 지냈다. 두 딸을 사마씨에게 출가시켜 두 딸이 태자비(太子妃)와 제왕비(齊王妃)가 되었으므로 총애와 신임을 받아 권세를 누렸다. 사후에 조정에서 태재태재(太宰)를 추증했고 무()를 시호로 내렸다. 문집 5권을 남겼다. 순욱(荀勗)은 한대(漢代) 순상(荀爽)의 손자로서 진()나라 초기에 시중(侍中제북군공(濟北郡公광록대부(光祿大夫) 등이 되어 기밀의 일을 전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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