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석泔淅, 감석甘石, 감선減膳, 감선減宣, 감선철악減膳徹樂

감석[泔淅] 쌀뜨물인데, 쌀뜨물처럼 흰 이빨을 가리킨 것이다.

감석[甘石] 전국 시대 제() 나라 감공(甘公)과 위() 나라 석신부(石申夫)의 병칭이다. 두 사람은 초() 나라의 당매(唐昧)와 조() 나라의 윤고(尹皐)와 함께 당시를 대표하는 천문학자이다. 감공은 천문성점(天文星占) 8, 석신은 천문(天文) 8권을 지었다. <史記 卷27 天官書> <史記正義 卷27>

감석[甘石] 전국 시대 제() 나라 사람인 감공(甘公)과 위() 나라 사람인 석공(石公)을 이르는바, 이 두 사람은 천문학(天文學)에 밝았다. 후한서(後漢書) 천문지(天文志)() 나라 석신부(石申夫)와 제() 나라 감공(甘公)이 천문(天文)을 맡아보는 벼슬을 지냈다.”고 하였다. 그래서 후세에 천문학에 능숙한 자를 감석(甘石)이라 칭한다.

감선[減膳] 나라에 재변이 있을 때 임금이 몸소 근신하는 의미로 수라상(水刺床)의 음식 가짓수를 줄이는 것을 이른다.

감선[減宣] 서한(西漢)의 혹리(酷吏)로 옥사를 다스리면서 많은 사람을 살해했다. 한서(漢書)에는 함선(咸宣)으로 되었다. 지금의 산서성 홍동현(洪洞縣)인 양현(楊縣) 출신으로 무제 때 하동태수부(河東太守府)에서 좌사(佐史)의 직에 있다가 어사중승(御史中丞)이 되었다. 회남왕(淮南王)과 주보언(主父偃)의 반란사건을 심문하라는 한무제의 령을 받고 과감하게 사건을 처리했다. 이후 파직과 복직을 여러 번에 걸쳐 반복하다가 어사중승(御史中丞)의 자리에 근 20년 가까이 재직했다. 후에 우부풍(右扶風)에 임명되어 부임하자 불법을 저지른 성신(成信)이라는 하급관리를 치죄하려고 했으나 성신이 도망쳐 상림원(上林苑)으로 들어갔다. 그가 우붕풍 관하의 현령과 군사를 이끌고 상림원으로 들어가 성신을 잡아서 죽였다. 그 와중에 화살이 상림원의 원문에 꽂혀 대역죄에 연좌되어 하옥되자 자살했다. <史記 卷122> <漢書 卷90 酷吏傳>

감선철악[減膳徹樂]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에 임금이 근신하는 뜻으로 음식의 가짓수를 줄이고 노래와 춤을 가까이 하지 않는 일을 이른다. 감선(減膳). 피전손선(避殿損膳). 철현(徹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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