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천사甘泉寺, 감천선갈甘泉先竭, 감천송甘泉頌, 감천약리感天躍鯉, 감천전甘泉殿

감천사[甘泉寺] 호북(湖北) 의창(宜昌) 서남쪽에 있는 사찰로, 육유(陸游)의 입촉기(入蜀記)작은 배로 서산의 감천사를 돌아봤는데, 대나무다리와 돌다리가 그윽한 흥취가 있었다. 정련정과 세심정이 있는데 강가에서 보는 산이 자못 전망이 트여 시원하였다.[以小舟游西山甘泉寺, 竹橋石磴, 甚有幽趣. 有靜練洗心二亭, 下臨江, 山頗疏豁]”라고 하였다.

감천선갈[甘泉先竭] 물맛이 좋은 샘은 먼저 마른다는 뜻으로, 재능(才能) 있는 사람이 일찍 쇠폐(衰廢)함을 비유(比喩)해 이르는 말이다. 장자(莊子) 산목(山木)곧은 나무가 먼저 베어지고, 단 우물이 먼저 마른다.[直木先伐, 甘井先竭.]”라고 하였다.

감천송[甘泉頌] 감천송은 한 나라 때 양웅(揚雄)이 지은 감천부(甘泉賦)를 가리킨다.

감천약리[感天躍鯉] ()나라 때의 효자 왕상(王祥)의 고사이다. 왕상은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繼母)의 학대를 받으며 살았으나 늘 효도를 지극히 하였다. 한번은 추운 겨울날 계모가 산 물고기를 먹고 싶어 하므로 왕상이 얼음을 깨고 직접 들어가 물고기를 잡으려 하자, 얼음이 갑자기 녹으면서 잉어 두 마리가 뛰어 나왔다고 한다. <晉書 卷33 王祥列傳> , 후한(後漢)의 효자 강시(姜詩)와 그의 아내 방씨(龐氏)에 대한 고사가 있다. 강시 부부는 어머니가 강물로 끓인 차를 좋아하여 매일 멀리 있는 강가에 가서 찻물을 길어 오고, 또 생선회를 좋아하여 강가로 가서 물고기를 잡아왔는데, 늘 즐거운 마음으로 효도를 다하며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강물 맛과 똑같은 샘물이 솟아오르고 거기서 매일 잉어 두 마리가 튀어나왔다. 이를 일러 용천약어(湧泉躍魚)라고 한다. <藝文類聚 卷89>

감천전[甘泉殿] 궁전 이름. 협서성(峽西省) 감천산(甘泉山) 위에다 진시황(秦始皇)이 처음 세운 것인데, 뒤에 한 무제(漢武帝)가 증축하였다. <漢書 揚雄傳>

감천화[甘泉火] 감천은 한() 나라 때 상군(上郡) 조음현(雕陰縣)의 산 이름으로 북쪽의 흉노(匈奴)와 접경지대인데, 오늘날의 섬서성(陝西省) 부주(鄜州)이다. 한 문제(漢文帝) 때 흉노가 북쪽 변경을 침입하므로 감천산에 척후병을 두고 봉화시설을 설치하여 그들을 경계하였다고 한다. () 나라 서비(徐悱)의 고의수도장사개등낭야성시(古意詶到長史漑登琅耶城詩)척후와 봉화로서 감천을 경계하고 상곡군을 설치하여 누란국을 막았다.[甘泉驚烽候 上谷拒樓蘭]”라고 하였다. <文選 卷二十二 遊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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