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좌跏趺坐, 가부정賈傅井, 가부지친葭莩之親, 가부질기상加斧質其上, 가부희假婦戲

가부좌[跏趺坐] 불교(佛敎)에서 앉는 법의 한 가지로, 결가부좌(結跏趺坐)와 반가부좌(跏趺坐)가 있다. 결가부좌(結跏趺坐)는 먼저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놓고 다시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놓는 것을 이르고, 반가부좌(半跏趺坐)는 오른발을 왼편 허벅다리에 얹고 왼발을 오른편 무릎 밑에 넣고 앉는 것을 이른다.

가부좌[跏趺坐] 참선할 때의 좌법(坐法)으로 두 발을 교차하여 좌우 넓적다리 위로 올리는 것을 전가좌(全跏坐)라 하고, 좌우 어느 한쪽 발만 반대쪽 넓적다리 위에 올리는 것을 반가좌(半跏坐)라 한다.

가부정[賈傅井] 가의정(賈誼井). 가부(賈傅)는 장사왕태부(長沙王太傅)를 지낸 한() 나라 때 문인 가의(賈誼)를 가리킨다. 가부정(賈傅井)은 호남(湖南) 장사(長沙) 가의(賈誼)의 옛 집터에 있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 보존된 우물이기도 하다. 가의가 장사왕태부로 있을 때 판 우물이라고 한다.

가부지상어급박[賈傅之傷於急迫] 가부(賈傅)의 급박한 데에 손상함. 가부(賈傅)는 한 문제(漢文帝) 때 장사왕 태부(長沙王太傅)를 지낸 가의(賈誼)를 말한다. 가의가 문제의 부름을 받아 20세의 나이에 박사(博士)를 거쳐 중대부(中大夫)까지 되었다가 대신의 시기로 장사왕 태부로 나가자, 조굴원부(吊屈原賦)를 지어 굴원을 조상하는 동시에 자신을 그에 비하였다. 스스로 상심하여 33세의 나이로 죽었다. <史記 卷84 屈原賈生列傳> 가의는 시인(時人)들을 너무 분명하게 비방하고, 장사왕 태부로 온 것에 대한 울분을 너그러이 참아 내는 아량이 없다는 비평이 있다.

가부지친[葭莩之親] 가부(葭莩)는 갈대 대롱 속의 엷은 막을 말하는데, 먼 촌수(寸數)의 인척(姻戚) 또는 친척 간의 관계가 매우 소원하고 옅은 것을 비유한다. 한서(漢書) 포선전(鮑宣傳)시중부마도위 동현은 본디 소원하나마 친척조차 없는데, 그저 교언영색만으로 스스로 출세했다.[侍中駙馬都尉董賢本無葭莩之親 但以令色諛言自进]”라는 말이 보이는데, 안사고(顏師古)의 주()()는 갈대이고, ()는 갈대 속의 흰 막으로 매우 얇은 부분을 말한다. 가부(葭莩)는 얄팍한 것을 비유한다.[葭 蘆也 莩者 其筩中白皮至薄者也 葭莩喻薄]”라고 하였다.

가부질기상[加斧質其上] 사형(死刑)에 처했음을 이른다. ()는 도끼, ()은 쇠 모탕인데, 사형을 집행할 때 죄인을 모탕 위에 올려놓고 도끼로 찍었다. ()()과 통용이다. <晏子春秋 問 下><呂氏春秋 貴直>

가부취결[可否取決] 회의에서, 회칙에 따라 의안(議案)의 가부를 결정함을 이른다.

가부투서상수류[賈傅投書湘水流] ()나라 가의(賈誼)가 문제(文帝) 때 중용(重用)되었다가 대신들의 질투 때문에 장사왕(長沙王) 태부(太傅)로 좌천(左遷)되어, 남으로 가 상수(湘水)를 건너다가 거기에 빠져 죽은 초()의 충신 굴원(屈原)을 조상하는 조굴원부(弔屈原賦)를 지어 상수에 던졌다.

가부희[假婦戲] 남자가 여자 옷을 입고 여러 가지 유희를 하는 것이다. <文獻通考 樂考 散樂百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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