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근지족强近之族, 강근지친强近之親, 강금姜衾, 강금지락姜衾之樂, 강급姜岌, 강기姜夔, 강기綱紀

강근지족[强近之族] 도움을 줄 만한 아주 가까운 친척(親戚)을 이른다.

강근지친[强近之親] 강근지족(强近之族). 도와줄 만한 가까운 친척(親戚). 아주 가까운 일가(一家)를 이른다.

강금[姜衾] 강금(姜衾)은 강굉(姜肱)의 이불이라는 뜻으로, 형제간의 우애를 의미한다. 강굉은 후한(後漢) 사람으로 자가 백회(伯淮)인데, 두 아우인 중해(仲海계강(季江)과 우애가 돈독하여 항상 한 이불을 덮고 잤으므로 강굉공피(姜肱共被)라는 고사가 생겼다. <後漢書 卷53 姜肱列傳> 강굉피(姜肱被).

강금지락[姜衾之樂] 형제간에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즐거움. 형제들끼리 우애가 돈독함을 이른다. 강금(姜衾)은 후한(後漢) 때 강굉(姜肱)의 이불이란 뜻으로, 강굉은 우애가 매우 돈독하여 큰 이불과 긴 베개를 만들어서 형제가 함께 덮고 잤다는 고사이다.

강급[姜岌] () 나라 때의 학자이다. 월식충(月食衝)을 최초로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元史 卷52 曆志1 日躔>

강기[姜夔] 강기(姜夔)의 자()는 요장(堯章), ()는 백석도인(白石道人). 요주(饒州) 파양(鄱陽: 지금의 강서성江西省 파양현波陽縣) 사람이다. 진사(進士)에 낙방하고, 장사(長沙), 한양(漢陽), 양주(揚州), 항주(杭州) 등지를 왕래하며 살면서, 일생 동안 벼슬을 하지 못하였다. 범성대(范成大), 양만리(楊萬里) 등과 친교가 있었다. 음률에 정통하여, 자작(自作) 가사에 스스로 곡보(曲譜)를 부쳤다.

강기[講期] 과거 시험일을 이른다.

강기[綱紀] 관명으로 주부(主簿)의 이칭(異名)이다. 한 고을의 사무를 맡았다. 후세에서는 한 집안의 사무를 맡은 가복(家僕)을 말하기도 한다.

강기[綱紀] 기강(紀綱). 나라의 법과 풍속, 규율과 질서, 풍습에 대한 기율(紀律), 또는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인 삼강오상(三綱五常)과 기율(紀律)을 말한다. 전체를 지탱하는 것이 강()이요, 나누어 맨 것이 기()이다. 응용하여 기율(紀律)의 뜻을 갖는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역박(棫樸)부지런한 우리 임금, 사방의 기강이 되시도다.[勉勉我王 綱紀四方]”라고 하였고, 또 가악(假樂)에서는 ()이 되며 기()가 되어, 편안함이 벗에게까지 미치도다.[之綱之紀 燕及朋友]”라고 하였다. 사기(史記) 하우본기(夏禹本紀)에서는 부지런하고 화목하여, ()이 되고 기()가 되었다.[亹亹穆穆 爲綱爲紀라고 하였다.

강기[綱紀] 법도와 규율 및 인륜의 도리 등을 가리킨다. 두보(杜甫)의 시 송위풍상낭주녹사참군(送韋諷上閬州錄事參軍)위생은 나이 많고 기운 또한 좋으며, 사리에 통달하고 식견 또한 뛰어나니. 그곳에서 법에 따라 기강을 장악하면 백성들은 공평무사한 그대의 정사를 반기리라.[韋生富春秋 洞徹有淸識 操持綱紀地 喜見朱絲直]”라고 하였다. 참고로 남조(南朝)시대 송()나라 포조(鮑照)의 시 대백두음(代白頭吟)곧은 절조는 붉은 거문고 줄과 같고, 맑은 성품은 옥병 속의 얼음 같네.[直如朱絲繩, 淸如玉壺氷.]”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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