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과甲科, 갑관甲觀, 갑관요蓋寬饒, 갑관지상甲觀之祥, 갑군甲裙, 갑금패검설윤균匣琴佩劒洩輪囷

갑과[甲科] 당대(唐代)에는 명경과(明經科)에 갑(((() 4()가 있었고, 진사시(進士試)에 갑과(甲科)와 을과(乙科)가 있었다.

갑과[甲科] ·무과 급제자들을 갑과·을과·병과 3등급으로 나누는데, 가장 성적이 우수한 첫 등급을 이른다.

갑과[甲科] 전시(殿試)의 성적에 따라 나눈 등급의 하나. 과거에서 최종 시험인 전시의 성적에 의하여 갑과(甲科을과(乙科병과(丙科)로 나누고, 갑과에는 3인을 뽑아 첫째는 장원랑(壯元郞)이라 하고, 둘째는 방안(榜眼) 또는 아원(亞元)이라 하고, 셋째는 탐화랑(探花郞)이라 하였으며, 장원랑에게는 종6품의 품계를 주고, 나머지 2인에게는 정7품의 품계를 주었다. 그리고 을과에는 7인을 뽑아 이들에게는 정8품의 품계를 주고, 병과에는 23인을 뽑아 이들에게는 정9품의 품계를 주었다. <大典會通 吏典 諸科> <禮典 諸科>

갑관[甲觀] 갑관은 제일관(第一觀)과 같은 말로, 갑관(甲館)으로도 쓴다. 이곳에 황태자가 거처하였으므로 후대에는 태자궁(太子宮)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나라 때의 누관(樓觀) 이름으로 원제(元帝)가 태자궁에 있을 때 성제(成帝)가 갑관 화당(畫堂)에서 태어나 세적황손(世嫡皇孫)이 되었다. 성제가 3세 되던 해에 조부인 선제(宣帝)가 죽고 원제가 제위에 오르자 갑관 화당에서 태어난 성제가 태자가 된 고사에서 유래하여 태자의 전고로 쓰인다. <漢書 卷10 成帝紀>

갑관요[蓋寬饒] ()나라 선제(宣帝) 때 사람이다. 품성이 강직 공청(剛直公淸)하여 직언을 잘했으므로, 황제가 형법(刑法)을 밝힐 생각에서 그를 중서관(中書官)에 임명하였다. 공경(公卿)과 귀척(貴戚)들의 죄상을 몰래 조사하여 검거하자 모두 두려워하여 감히 법을 범하지 못했다고 한다. 간대부(諫大夫)를 거쳐 사예교위(司隸校尉) 등을 지내다가, 황제의 뜻을 거스르는 상주(上奏)를 하여 옥에 갇히게 되자 자결하였다.

갑관요[蓋寬饒] 개관요. 갑관요는 자()가 차공(次公)으로, 전한(前漢)의 정치가이다. 평은후(平恩侯) 허백(許伯)이 새집으로 이사하자 승상을 비롯하여 어사·장군·중이천석(中二千石) 할 것 없이 모두 가서 축하하였으나 갑관요만은 가지 않다가, 허백이 초청한 뒤에야 마지못해 갔다. 술자리가 무르익었을 때 장신소부(長信少府) 단장경(檀長卿)이 일어나 원숭이와 개가 싸우는 춤을 추자 좌중이 모두 웃었으나, 갑관요만은 위를 쳐다보며 아름답구나! 그러나 부귀는 무상한 것이어서 갑자기 주인이 바뀌어 버리니, 집은 여관이나 같은 것이다. 이런 경우를 내가 많이 보았다. 오직 삼가고 또 삼가야만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데, 어찌하여 이를 경계할 줄 모른단 말인가.[美哉! 然富貴無常, 忽則易人, 此如傳舍, 所閱多矣. 唯謹慎為得久, 君侯可不戒哉.]”라고 탄식하고는 곧장 일어나서 나갔다고 한다. <漢書 卷77 蓋寛饒傳> <古今事文類聚 續集 卷6 居處部 館驛 第如傳舍, 15 燕飮部 酣飮 次公酒狂참고로 자가 지명(地名)이나 성씨(姓氏)로 쓰일 때에는 음이 이다.

갑관지상[甲觀之祥] 갑관은 태자궁(太子宮)을 이르는 말로, 즉 태자의 탄생(誕生), 또는 탄일(誕日)을 축복하는 뜻으로 한 말이다. 갈연(葛衍)의 성절도량소(聖節道場疏)오백 년 만에 성인이 탄생하니, 하늘이 갑관의 상서를 내렸도다.[五百年而有作 天開甲觀之祥]”라고 하였다.

갑광[甲光] 갑옷의 빛.

갑군[甲裙] 허리에 치마처럼 두르는 갑옷이다.

갑금패검설윤균[匣琴佩劒洩輪囷] 궤갑 속의 거문고를 연주하고,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불울함을 토설함. 두보(杜甫)의 시 인일(人日)차고 있던 칼 뽑으니 기운이 하늘 찌르고, 갑 속의 금을 꺼내 연주하니 물 흐르는 듯하네.[佩劔衝星聊暫拔 匣琴流水自須彈]”라고 하였다. <古今事文類聚 前集 卷6 人日> 윤균(輪囷)은 품고 있는 포부를 펴지 못해 불울해하는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