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의우보지론賈誼遇報之論, 가의장태식賈誼長太息, 가의재봉선실소賈誼再逢宣室召, 가의적장사賈誼謫長沙

가의우보지론[賈誼遇報之論] 가의(賈誼)의 임금의 대우에 따라 신하가 보답한다는 논의. 가자(賈子) 계급(階級)위에서 예의염치(禮義廉恥)로 신하를 대우하는데 신하로서 절행(節行)으로 임금에게 보답하지 않는 자는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가의유미야[可矣猶未也] 좋기는 하지만 아직 멀었음. 괜찮기는 하지만 아직 도()와는 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주희(朱熹)는 논어집주(論語集註)에서 ()는 겨우 괜찮고 아직 극진하지 못하다.[僅可而有所未盡之辭]”와 같은 표현이라고 했다.

가의이빈[賈誼而擯] 한 문제(漢文帝) 때 가의(賈誼)는 시문에 뛰어나고 제자백가에 정통하여 문제의 총애를 받아 등용된 지 1년 만에 태중대부(太中大夫)가 되었다. 그러나 주발(周勃) 등 당시 고관들의 시기로 장사왕(長沙王)의 태부(太傅)로 좌천되었다. <漢書 卷48 賈誼傳>

가의장태식[賈誼長太息] 가의는 한 문제(漢文帝) 때 하남 태수(河南太守) 오공(吳公)의 천거로 20여 세에 등용된 지 1년 만에 파격적으로 승진하여 태중 대부(太中大夫)에까지 올랐다. 그는 문제에게 변방의 소란 및 내부의 불안정한 상황 등 시국(時局)을 구제하기 위해 치안책(治安策)을 올리면서 일의 형세를 살피건대 통곡할 만한 것이 한 가지요, 눈물을 흘릴 만한 것이 두 가지요, 장탄식할 만한 것이 여섯 가지이다.[竊惟事勢 可爲痛哭者一 可爲流涕者二 可爲長太息者六]”라고 전제한 다음, 정치의 득실을 일일이 예를 들어 진달(進達)하였다. <史記 卷84 屈原賈生列傳> <漢書 卷48 賈誼傳>

가의재봉선실소[賈誼再逢宣室召] 왕의 부름을 다시 받음을 말한다. ()의 가의(賈誼)가 나이 20 전에 문제(文帝)의 부름을 받고 박사(博士)를 거쳐 태중대부(太中大夫)까지 되었다가 주발(周勃관영(灌嬰)등의 모략에 의하여 장사왕 태부(長沙王太傅)로 밀려났는데 그 후 문제는 가의가 잊혀지지 않아 다시 불러들였다. 그리하여 가의가 다시 들어와 문제를 뵈올 때 문제는 막 미앙궁(未央宮)앞의 정실(正室)인 선실(宣室)에서 제육[]을 받고 있었다. <漢書 賈誼傳>

가의적장사[賈誼謫長沙] 가의(賈誼)는 한 문제(漢文帝) 때의 명신이다. 낙양(洛陽) 사람으로 시문에 뛰어나고 제자백가에 정통하였으며, 약관의 나이에 문제(文帝)에게 발탁되어 박사(博士)가 되었다가 태중대부(太中大夫)로 승진되었다. 정삭(正朔)과 복색(服色)을 고치고 법률을 제정하며 예악(禮樂)을 일으키려 하였으나, 주발(周勃) 등 군신(群臣)들의 시기를 받아 장사왕 태부(長沙王太傅)로 좌천된 것을 말한다. <漢書 卷四十八 賈誼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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