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賈鄭, 가정嘉靖, 가정稼亭, 가정柯亭, 가정관加定官

가정[賈鄭] 가규(賈逵)와 정현(鄭玄)으로 모두 한() 나라 사람이다. 가규는 경학에 능통하여 경전의 주에 관한 저술이 많았는데 특히 좌씨전(左氏傳)에 조예가 깊었으며, 정현 역시 경학가로서 모시전(毛詩箋)과 주례(周禮의례(儀禮예기(禮記() 등의 주를 저술하였다. <後漢書 卷三十五, 卷六十六>

가정[嘉定] 남송(南宋) 영종(寧宗)의 연호이다. 재위 기간은 1208~1224년이다.

가정[賈亭] 당대(唐代) 정원(貞元) 연간(785~804)에 항주자사(杭州刺史)를 지낸 가전(賈全)이 세운 것으로 가공정(賈公亭)이라고도 했다.

가정[嘉靖] 명 세종(明世宗)의 연호이다. 재위 기간은 1522~1566년이다.

가정[嘉靖] 아름답고 안정되게 한다는 뜻이다. 서경(書經) 무일(無逸)에 주공(周公)이 은 고종(殷高宗)을 일러 말을 하면 화락했으며, 감히 황녕하지 않아서, 은나라를 아름답고 안정되게 하여 크고 작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혹시라도 원망하는 이가 없었으니, 그래서 고종의 향국이 59년이었다.[言乃雍 不敢荒寧 嘉靖殷邦 至于小大 無時或怨 肆高宗之享國 五十有九年]”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가정[稼亭] 이곡(李穀)으로, 본관은 한산(韓山), 초명이 운백(芸白), 자는 중보(仲父), 호는 가정, 시호는 문효(文孝)이며, 이자성(李自成)의 아들이요, 이색(李穡)의 아버지로 이제현(李齊賢)의 문인이다. 1320(충숙왕7) 문과에 급제, 1333(충숙왕 복위2) 원나라 제과(制科)에 제2갑으로 급제, 벼슬은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를 지내고 한산군(韓山君)에 봉해졌다. 이제현(李齊賢) 등과 함께 민지(閔漬)가 편찬한 편년강목(編年綱目)을 증수하고, 충렬·충선·충숙 3(三朝)의 실록을 편수하였다. 가전체 작품 죽부인전(竹夫人傳)이 있고, 저서로 가정집(稼亭集)이 있다.

가정[柯亭] 원래 절강성(浙江省) 소흥현(紹興縣) 서남쪽에 있는 정자 이름인데, 후한(後漢) 때의 문인인 채옹(蔡邕)이 일찍이 회계(會稽)로 피난 가던 도중 가정에서 묵다가 이 정자의 서까래로 얹은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천하의 보기(寶器)가 되었다 한다.

가정[柯亭] 절강성(浙江省) 소흥(紹興)에 있는 지명인바, 이곳에서 나는 대나무는 질이 아주 좋은데, () 나라의 채옹(蔡邕)이 가정관(柯亭館)의 대나무 서까래로 명적(名笛)을 만들었고, 뒤에 진() 나라의 환이(桓伊)가 그 저를 불어 유명했다. 후대에는 좋은 젓대를 형용하는 말로 되었다. <晉書 桓伊傳>

가정[家丁] 집안에서 부리는 남자일꾼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가정관[加定官] 정원 외에 더 늘여 잡은 관원. 임시로 설치한 관원. 임시로 더 정한 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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