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허呵噓, 가헌稼軒, 가현歌絃, 가현加見, 가현옹家鉉翁

가허[呵噓] 입김을 내뿜음. 관심이나 인심이 쉽게 뜨거워지거나 식어버리는 것을 가리킨다.

가헌[稼軒] ()나라 사람 신기질(辛棄疾)의 호이다. ()나라 역성(歷城) 사람으로 자는 유안(幼安), 호는 가헌거사(稼軒居士), 시호는 충민(忠敏)이다. 벼슬은 소흥지부(紹興知府), 제주지부(滁州知府), 용도각대제(龍圖閣待制)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에 가헌사(稼軒詞), 가헌집(稼軒集) 등이 있다. <宋史 卷401>

가현[歌絃] 거문고 등 현악기를 타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상고 때 학교에서 시를 가르칠 때 거문고나 비파 등을 연주하며 시를 읊고 노래하였다는 데서 일반적으로 학문을 학습하는 뜻으로 쓰인다.

가현[加見] 장기가현(藏器加見)을 말하는데, 이는 무덤을 쓸 때 각종 기물을 놓고 관()의 장식품인 현()을 관에다 씌우는 것을 말한다. <儀禮 旣夕>

가현산[歌絃山] 경기(京畿) 김포(金浦)의 서쪽에 있는 산 이름이다.

가현옹[家鉉翁] 호는 칙당(則堂)이다. 음직으로 벼슬에 올라 여러 벼슬을 거쳐 단명전 학사(端明殿學士)를 지냈다. 원나라의 대군이 차츰 밀려들어 오자 승상 오견(吳堅)과 가여경(賈餘慶) 등이 수령들에게 격문을 보내 항복하게 하였는데, 가현옹만은 항복 문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얼마 후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억류되었으며, 그곳에서 송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여러 달 동안 음식을 끊었다. 춘추(春秋)에 조예가 깊어 하간(河間)에서 제자들을 길렀으며, 성종(成宗)이 즉위하자 석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춘추집전상설(春秋集傳詳說)이 있다. <宋史 卷421 家鉉翁列傳>

가형[家兄] 남에게 자기 형을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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