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고江皋, 강고무비强固無比, 강고삼편康誥三篇, 강고심江古心, 강고어羌古魚, 강고여형康誥呂刑, 강곤륜康昆侖
❍ 강고[江皋] 강기슭. 강변. 초사(楚辭) 구가(九歌) 상부인(湘夫人)에 “아침에는 말에 올라 강변을 달리고, 저녁에는 물을 건너 서쪽으로 갔네.[朝馳余馬兮江皋, 夕濟兮西澨.]라고 하였다.
❍ 강고[康誥] 서경(書經)의 주서편(周書篇)에 있는 글이다. 무왕(武王)이 강숙(康叔)에게 일러 주는 말이라 해서 강고(康誥)라 한다.
❍ 강고득실[康誥得失] 대학장구(大學章句) 전(傳) 10장에 “서경(書經) 강고(康誥)에 이르기를 ‘천명은 일정한 곳에 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선하면 얻고 선하지 못하면 잃음을 말한 것이다.[康誥曰惟命不于常, 道善則得之, 不善則失之矣.]”라는 구절을 가리킨다.
❍ 강고무비[强固無比] 비교(比較)할 수 없을 정도(程度)로 굳세고 튼튼함을 이른다.
❍ 강고삼편[康誥三篇] 무왕의 아우 강숙(康叔)을 위후(衞侯)로 봉하고 계고한 강고(康誥), 주고(酒誥), 재재(梓材) 등 3편을 말한다.
❍ 강고심[江古心] 송(宋)나라의 학자이자 정치가인 강만리(江萬里)를 가리킨다. 자는 자원(子遠), 호는 고심(古心)이며, 도창현(都昌縣) 사람이다. 가학을 이어 정주학(程朱學)에 조예가 깊었다. 도종(度宗) 때 좌승상(左丞相)을 지냈으며 성품이 강직하여 당시의 권신이었던 가사도(賈似道)의 미움을 받았다. 1274년에 시세가 어려움을 알고 물러나 지산(芝山)에 지수정(止水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은거하였는데, 다음 해에 원나라 군대가 대거 침략하여 그가 있는 곳까지 들어오자 아들 등과 함께 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宋史 卷418 江萬里列傳>
❍ 강고어[羌古魚] 강고도어(羌古道魚)·간고어(乾古魚). 일본어인 ‘가쓰오’의 음역어(音譯語)로 가다랭이, 또 ‘가쓰오부시’ 곧 가다랭이의 살만을 발라내어 끓는 물에 쪘다가 불에 쬐어 말려 조미하여 다시 햇볕에 말려서 굳힌 것을 뜻하기도 한다. 간고어라 할 때에는 ‘가쓰오부시’의 뜻으로만 쓴다.
❍ 강고여형[康誥呂刑] 서경(書經) 주서(周書)의 편명으로, 강고(康誥)는 성왕이 강숙(康叔)에게 엄한 형벌로 법에 따라 나라를 다스릴 것을 거듭 강조한 것이요, 여형(呂刑)은 목왕(穆王)의 명으로 사구(司寇)가 된 여후(呂侯)가 우(禹) 임금의 속형(贖刑) 법을 본받아 새로 범위를 넓혀 돈으로 속죄하는 새로운 법을 시행한 것이다.
❍ 강곤륜[康昆侖] 당(唐) 나라 때 비파를 잘 탔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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