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무監撫, 감무瞰霧, 감무甘茂, 감무견자지고鑑無見疵之辜, 감무맹식양甘茂盟息壤, 감무지언甘茂之言

감무[監撫] 감국무군(監國撫軍)의 준말이다. 감국(監國)과 무군(撫軍)의 합칭으로 태자(太子)의 직무(職務)이다. 임금이 출정(出征)할 때에 태자(太子)가 남아서 나라를 지키면 그것을 감국(監國)이라 하고, 임금을 따라 출정하면 그것을 무군(撫軍)이라 한다.

감무[瞰霧] 안개를 내려다보다. 굴원(屈原)의 비회풍(悲回風)곤륜산(崑崙山)에 의지하여 안개를 내려다보며, 민산(岷山)에 숨어서 강물을 맑게 하는구나. 솟구치며 흐르는 무서운 여울소리, 곤두박질하며 출렁이는 파도(波濤) 소리를 듣고 있노라.[馮崑崙以瞰霧兮 隱岷山以淸江 憚涌湍之磕磕兮 聽波聲之洶洶]”라고 한 데서 보인다.

감무[甘戊] 전국시대 진()나라 하채(下蔡) 사람이다. () 혜왕(惠王)에게 발탁되어 장군이 되었으며, 무왕(武王) 때 좌승상(左丞相)이 되어 한()나라 의양(宜陽)을 빼앗았다. 저리질(樗里疾)과 사이가 나빠 소왕(昭王) 때 참소를 받아 제()나라로 망명하였다가 위()나라에서 죽었다. ()()로도 쓴다. <史記 樗里子甘茂列傳>

감무[甘茂] 감무(甘戊). ()나라 재상. 하채(下蔡) 사람으로 지모에 뛰어났던 인물이다. 처음 진 혜왕(秦惠王)을 섬겨 장군이 되었다가 진 무왕(秦武王) 때 좌승상(左丞相)이 되어 의양(宜陽)을 정벌하였다. 그 후 공손석(公孫奭)과 틈이 벌어져 제()나라로 도망하였다가 위()나라에서 죽었다.

감무견자지고[鑑無見疵之辜] 경무견자지죄(鏡無見疵之罪). 거울은 사람의 얼굴을 비추어 험을 나타내어도 사람은 이를 벌()하지 아니한다는 말이다. 한비자(韓非子) 24편 관행(觀行)옛 사람은 스스로의 눈으로는 자신을 볼 수 없었기에 거울로 보았으며, 지혜로 자신을 알기에 부족했기 때문에 도로써 자신을 바로잡았다. 거울이 흠을 비췄다 해서 허물 될 것이 없고, 도가 잘못을 밝혔다고 해서 미워할 것도 없다. 눈이 있어도 거울이 없으면 수염과 눈썹을 바로 다듬을 수 없고, 몸이 도에서 벗어나면 자신의 미혹을 알 수가 없다.[古之人, 目短於自見, 故以鏡觀面. 智短於自知, 故以道正已. 鏡無見疵之罪, 道無明過之惡. 目失鏡, 則無以正鬚眉. 身失道, 則無以知迷惑.]”고 한 데서 보인다.

감무맹식양[甘茂盟息壤] 사기(史記) 감무열전(甘茂列傳)과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의 기록에 의하면, 진 무왕(秦武王)이 좌승상(左丞相) 감무(甘茂)에게 군대를 거느리고 한()나라의 의양(宜陽)을 공격하게 하자, 감무(甘茂)가 무왕(武王)이 남의 참소로 인해 자기를 믿지 않을까 두려워 식양(息壤) 땅에서, 무왕(武王)으로부터 자기를 믿겠다는 언약을 받아낸 일을 가리킨다. 식양(息壤)은 진()나라의 지명이다.

감무지언[甘茂之言] 감무(甘茂)의 말. 진 무왕(秦武王)이 감무로 하여금 위() 나라와 제휴하여 한() 나라를 치게 했을 때, 감무가 병권을 가진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참언을 듣지 말고 자신을 끝까지 믿어 달라고 하면서, 옛날 증삼(曾參)이 사람을 죽였다는 헛소문과 위 문후(魏文侯) 및 악양(樂羊) 사이의 고사 등을 예로 들어 무왕을 설득한 이야기를 가리킨다. <資治通鑑 卷3 周記 赧王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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