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검비匣劒悲, 갑검유등匣劍帷燈, 갑검초소사두광匣劍初銷射斗光, 갑골문자甲骨文字

[] ()은 송()나라 때 지방 군대의 기층 조직 단위인데, 25인이 1갑이다. 송나라 이강(李綱)의 건염진퇴지(建炎進退志) 3권에 “4갑이 1()가 되는데, 대장(隊將)으로 정부(正副) 2인이 있다.”라고 하였다.

[] 산이 물가에 임하여 절벽이 된 곳을 말한다.

[] 위 무제(魏武帝)가 만든 네모 질룩한 고깔이다.

갑검비[匣劒悲] 상고의 제왕 전욱(顓頊)에게 예영(曳影)이란 검이 있었는데, 사방에서 적이 쳐들어올 경우 이 검이 스스로 허공에 뛰어올라 어느 곳을 가리키는데 그곳으로 공격하면 반드시 승리하였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이 검이 갑() 속에서 늘 울었다 한다. 일반적으로 재능을 품고 세상에 쓰이지 못하고 불우하게 일생을 사는 경우를 뜻한다.

갑검유등[匣劍帷燈] (: 물건을 담는 작은 상자) 속의 보검과 휘장 안의 밝은 등불. 검의 날카로운 기운과 불빛은 가릴 수 없음을 비유한 말로, 실제로 있는 명확한 사실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추지 못함을 이른다. 서경잡기(西京雜記) 1고제가 백사를 베었던 검이 전해오는데, 검의 위는 칠채주(七彩珠)와 구화옥(九華玉)으로 장식했고, 오색 유리를 섞어 검갑(劍匣)을 삼았다. 검은 방안에 두어도 그 빛이 마치 밖에 비치는 것 같아, 검을 뽑았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高帝斬白蛇劍. 劍上有七采珠, 九華玉以為飾, 雜廁五色琉璃為劍匣, 劍在室中, 光景猶照於外, 與挺劍不殊.]”라고 하였다.

갑검초소사두광[匣劍初銷射斗光] 간장(干將)과 막야(莫邪)의 두 명검(名劍)이 땅속에 묻혀서 하늘 위의 두우(斗牛) 사이에 자기(紫氣)를 내뿜고 있다가 발굴되어 세상에 나왔다는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36 張華列傳>

갑골문[甲骨文] 중국 최초의 문자 기록.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한자로서, 복사(卜辭), 계문(契文), 귀갑문자(龜甲文字), 은허문자(殷墟文字)라고 부르기도 한다. 거북껍질이나 소의 어깻죽지 뼈에 새겨져서 갑골문이라고 부르며, 옛날에 점을 칠 때 사용한 것이어서 복사라고도 한다. 또한 은왕조(殷王朝) 때 도성의 유적지인 은허(殷墟)에서 출토되어 은허문자라고도 한다. 문자의 수는 약 3,000개인데 그 중 해독된 글자는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갑골문에 기록한 것은 제사·농업·전쟁·수렵·일기, 왕의 행동과 질병 및 신들의 재앙에 관한 복문(卜問)이었다.

갑골문자[甲骨文字] 갑골문자는 거북의 껍질(배와 등껍질 모두 사용)이나 소 어깨뼈 등에 새겨 넣은 중국 고대의 상형문자이다. 중국문자의 시초로 하남성(河南省) 은허(殷虛)에서 많이 발견되었다. 기원전 14세기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는데 원시 국가에서 앞날을 점치는 내용과 점복(占卜)의 기록을 새긴 것이 많다. 그래서 갑골문을 복사(卜辭)라고도 한다. 날카로운 송곳이나 돌 같은 것으로 딱딱한 곳에 새기다 보니 자획 형태가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