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이수통感而遂通, 감이후응박이후동感而後應迫而後動, 감인甘人, 감임자減任子

감이수통[感而遂通] 점괘(占卦)에 신()이 감응(感應)되어, 모든 일이 통()하게 됨. 주역(周易) 계사전 상(繫辭傳上) 10장의 생각도 없이 함도 없이 고요히 움직이지 않다가 일단 감응하면 천하의 모든 일에 두루 통한다.[無思也 無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자어류(朱子語類) 95 2조에 주역(周易) 계사전 상(繫辭傳上)적연히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것은 일반 사람도 모두 이러한 마음이 있지만, ‘감응하면 마침내 천하의 일에 통한다.’라는 것에 이르러서는 오직 성인만이 할 수 있다. 일반 사람은 그렇지 못하니, 일반 사람은 이러한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미발시에 벌써 어지럽다.[寂然不動 衆人皆有是心 至感而遂通 惟聖人能之 衆人卻不然 蓋衆人雖具此心 未發時已自汩亂了]”라고 하였다.

감이수통천하[感而遂通天下] 주역(周易) 계사전 상(繫辭傳上)역은 생각이 없고 하는 것도 없어 적막하게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느끼게 되면 마침내 천하의 일을 통하나니, 천하의 지극한 신령스러움이 아니면 그 누가 여기에 참예할 수 있겠는가.[易 无思也 无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 非天下之至神 其孰能與於此]”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사람 마음의 신묘함을 말한 것이다.

감이후지[坎而後止] 구덩이에 빠진 후에는 기다리라는 뜻으로, 험난한(구덩이) 상황이라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오직 밝은 마음으로 임하면 역경이 오히려 새로운 희망을 만들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감이후응 박이후동[感而後應 迫而後動] 외물(外物)에 감촉(感觸)된 뒤에 비로소 호응하며 외물(外物)이 급박하게 다가온 뒤에 비로소 움직임. 관자(管子) 심술 상(心術 上)편에 감촉된 뒤에 호응하고……사물이 이른 뒤에 호응한다.[感而後應……物至則應]”고 한 내용이 보이고, 회남자(淮南子) 원도훈(原道訓)편에도 감촉된 뒤에 호응하고……사물이 이른 뒤에 정신이 호응한다.[感而後動……物至而神應]”고 한 내용이 있고, 급박하게 다가오면 호응하고 감촉되면 움직일 수 있다.[迫則能應 感則能動]”고 한 부분이 있고, 정신훈(精神訓)편에도 감촉되면 호응하고 급박하게 다가오면 움직이고 부득이한 뒤에 나아간다.[感而應 迫而動 不得已而往]”고 한 내용이 보인다. ()은 급박하게 다가온다는 뜻이고. ()은 호응한다는 뜻이다.

감인[甘人] 사람의 살을 맛있게 먹음을 이른다. 굴원(屈原)의 초사(楚辭) 초혼(招魂)혼이여 돌아오라! 그대는 저 지하세계에도 내려갈 수 없는 몸이라네. 지하의 수문장은 아홉 구비 굽은 몸이며 뾰족한 뿔이 있다네. 두툼한 등심에 핏빛 엄지손가락으로 사람을 휘몰며 번개처럼 날뛴다네. 세 개의 눈에 호랑이 머리이며 몸뚱이는 소와 같은 괴상한 것들이라네. 사람의 고기를 모두 달게 먹으니, 돌아오라! 몸소 재앙을 만날까 두렵도다.[魂兮歸來! 君無下此幽都些. 土伯九約, 其角觺觺些. 敦脄血拇, 逐人駓駓些. 參目虎首, 其身若牛些. 此皆甘人, 歸來! 恐自遺災些.]”라고 한 데서 보인다.

감임자[減任子] 임자(任子)는 교사(郊祀) 등 국가의 큰 행사가 있을 적에 평소 공()이 있는 공경(公卿)의 자제(子弟)들에게 특별히 음직(蔭職)을 내려 출사(出仕)하게 하는 제도인데, ()나라는 국초부터 이를 시행하여 지나치게 많은 관료들이 배출되어 커다란 문제가 되었다. 이에 송 인종(宋仁宗)은 경력(慶曆) 3(1043)에 조칙을 내려 임자(任子)의 숫자를 줄이게 하였으며, 인종(仁宗) 가우(嘉祐) 초년(初年)에 용도각직학사(龍圖閣直學士)인 이간지(李柬之)의 요청으로 음보(蔭補)의 법()을 수정하였고, 지간원(知諫院) 범진(范鎭)이 또다시 말하여 이후 매년 유관(流官) 300여 명을 줄였다. <宋史 選擧志> 유관(流官)은 원래 토관(土官)과 상대되는 말로 정식으로 임명된 벼슬아치들을 지칭한 것이다. ()나라 때에는 유내(流內)와 유외(流外)로 관리들을 나누어 유외(流外)는 잡류(雜流)로 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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