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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제[甘薺] 감제는 냉이를 말한다. 향산전서(響山全書) () 3의 소주(小註)성 아래에서 장난삼아 감제(甘薺)를 뜯었다. 유록(遊錄)에 자세하게 나온다.”고 하였다.

감제[柑製] 황감제(黃柑製)라고도 한다. 임금이 매년 제주(濟州)에서 진헌하는 황감(黃柑 )을 성균관(成均館)과 사학(四學)의 유생(儒生)에게 하사하고 보이던 시험으로, 대책(對策((((((((() 중에서 1편을 제술(製述)하게 하였다. 합격하면 문과(文科) 전시(殿試)나 복시(覆試)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다. <大典通編 禮典 諸科 黃柑製>

감제시[柑製試] 조선 시대에 해마다 동짓달이 되면 제주(濟州) 목사(牧使)가 매년 귤을 진상(進上)하였는데, 임금이 이 귤을 성균관과 사학(四學)의 유생(儒生)들에게 내리고 치르는 과거를 말한다.

감조[鑑藻] 감조(鑑藻)는 감식안(鑑識眼)이다. , 사물의 가치나 진위를 판정하는 안목을 이른다.

감조[減竈] 전국 시대의 제() 나라의 장수 손빈(孫臏)이 위() 나라를 쳐들어갔을 때 군사들에게 명령하여 첫날에는 아궁이 10만 개를 만들게 하고, 다음날에는 5만 개를 만들게 하고 또 그 다음날에는 2만 개를 만들게 하여, 추격하는 위 나라 장수 방연(龐涓)이 아궁이의 수를 세어 보고 제 나라 군사 과반수가 도망한 것으로 착각하고 진격하였다가 몰살당한 고사이다. <史記 卷六十五 孫武傳>

감조관[監造官] 국가에서 하는 일에 대하여 관리·감독하는 직책이다.

감조증조[減竈增竈] 아궁이 숫자를 줄인다[减竈]는 말은, 아궁이 숫자를 늘임[增竈]. ()나라 장수 손빈이 위()나라 방연(龐涓)과 싸우면서 썼던 계책을 가리킨다. 손빈이 거짓으로 후퇴하며 날마다 아궁이 숫자를 줄여 군사들이 도주한 것처럼 위장하니, 방연이 방심하고 군대를 진군시켜 마릉(馬陵)에 이르러 포위되어 몰살되었다. <史記 卷65 孫子吳起列傳> 아궁이 숫자를 늘인다[增竈]는 말은, 우후(虞詡)가 조가현(朝歌縣)의 현령이 되어 온갖 묘책으로 비적(匪賊)을 토벌하자 태후(太后)는 그가 장수의 지략이 있다고 여겨 무도 태수(武都太守)로 삼았다. 이때 강족(羌族)이 반란을 일으켜 우후의 부임을 막자 우후는 구원하는 군대가 많음을 보이려고 날마다 진군하며 아궁이 숫자를 곱절로 증가시켰다. 혹자가 손빈이 아궁이 숫자를 줄인 것과 다르다고 따지자, 우후는 손빈은 약함을 보인 것이고, 나는 강함을 보인 것이니 형세가 같지 않다.”라고 대답하였다. 우후는 이어서 군사들을 시켜 옷을 바꿔 입고 끊임없이 성문을 출입시켜 군대가 많은 것을 보이고, 한편으로 복병을 설치하여 강족이 달아나는 길을 급습하여 대파시켰다. <後漢書 卷88 虞詡列傳> <史略 卷3 東漢>

감조하토[監照下土] 아래 세상을 비춤. 세상에 군림한다는 뜻이다. 장자(莊子) 14편 천운(天運)제왕이 구주낙서(九疇洛書)의 일을 평화롭게 잘 다스리고 덕을 갖추어 아래 세상을 비추면 천하가 떠받들 것이니 이것을 일러 최고의 제왕[上皇]이라 한다.[九洛之事, 治成德備, 監照下土, 天下載之, 此謂上皇.]”고 한 데서 보인다.

감좌[坎坐] 감은 북쪽을 뜻하므로,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향하여 자리 잡은 묏자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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