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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연[欿然] 스스로 만족하지 않은 모양. 불만스러운 모양이다.

감연수[甘延壽] 감연수(甘延壽)는 전한(前漢) 원제(元帝) 때 사람으로 자()가 군황(君況)인데, 소년 시절부터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여 요동태수(遼東太守)가 되었으며 조정에 들어와 간대부(諫大夫)가 되었다.

감연이뇌[欿然而餒] 감연(欿然)은 부족함이고, ()는 기()가 몸에 충만하지 못한 것이다. (欿)은 운회(韻會)()와 감()의 반절음(反切音)이니, 부족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欿)은 어떤 일을 행한 다음 양심(良心)에 부끄러움이 있어 쾌족(快足)하지 못하여 기()가 충만(充滿)하지 못함을 이른다. 대학(大學)의 성의장(誠意章)에 자겸(自謙)이란 말이 보이는데, ()은 겸()으로 쾌족(快足)의 뜻이어서 이와는 정반대라 할 것이다.

감영[甘英] 한 나라 때 사람으로, 서해(西海)의 끝까지 가보았던 사람이다, 감영은 반초(班超)의 하리(下吏)였는데, 반초가 그를 파견하여 서해의 끝까지 가게 하자, 감영은 전 시대 사람들이 가보지 않은 곳까지 모두 가 보았다. <後漢書 卷88 西域傳>

감영백기[甘寧百騎] 감영은 삼국 시대 오() 나라 사람이다. 성품이 사치를 좋아하여 출입할 때, 육로에서는 중기(重騎)가 연달았고 수로에서는 경주(輕舟)가 연달았다 한다. <三國志 吳志 甘寧傳>

감영사행[甘英使行] 감영(甘英)은 중국 후한(後漢)의 무장이다. 반초(班超)의 부장(部將)으로 있으면서 영원(永元) 9(97) 반초의 명을 받아, 대진국(大秦國 로마제국)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그의 여행 견문기가 후한서(後漢書) 서역전(西域傳)에 실렸다. 조지국(條支國 시리아)에 다다랐을 때, 앞을 가로막는 망망대해(茫茫大海)를 건너기를 단념하였다고 하는데, 비록 감영이 사명을 다하지 못하였지만, 이 여행에서 얻은 견문은 중국 사람의 서아시아에 관한 지식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었다.

감영첩[監營牒] 감영에 보내는 공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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