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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웅[奸雄] 권세를 농단하며 세상을 속이고 높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을 가리킨다. 손성(孫盛)의 이동잡어(異同雜語)태조(太祖: 조조曹操)가 일찍이 허자장에서 묻기를 내가 어떤 사람인가?’라고 하니, 자장이 대답하지 않다가 다시 묻자 마지못해 치세의 능신이요, 난세의 간웅이십니다.’라고 하니, 태조가 그 말을 듣고 큰 소리로 웃었다.[太祖嘗問許子將: ‘我何如人?’ 子將不答. 固問之, 子將曰:‘子治世之能臣, 亂世之奸雄.’ 太祖大笑.]”라고 하였다. 허자장(許子將)은 후한(後漢) 허소(許劭)의 자이다. 젊어서부터 이름이 높았다. 향당(鄕黨)의 인물(人物)들을 따져 논하기 좋아하여 매달 초하루마다 그 품제(品題)를 바꾸었기에 여남(汝南) 풍속에 월단평(月旦評)이란 것이 있다.

간웅분향[姦雄分香] 간웅(奸雄)은 조조(曹操), 죽을 때 남은 향()을 부인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유명을 내렸다. 후한 말기에 허소(許劭)가 조조(曹操)의 상()을 보고 치세의 유능한 신하요, 난세의 간사한 영웅이다.[治世之能臣, 亂世之奸雄.]”라고 말한 일이 있다. <資治通鑑 卷58 漢紀50 孝靈皇帝中>

간웅최득정[姦雄最得情] 간웅(姦雄)이라는 말에 최고로 좋아함. 처음에 조조(曹操)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는데, 교현(橋玄)지금의 형세로 보면 천하가 장차 어지러워질 텐데 생민을 안정시킬 사람은 바로 그대일 것이다.[今天下將亂 安生民者其在君乎]”라고 말했으므로, 조조가 항상 지기(知己)로 여기면서 감격하다가 교현이 죽은 뒤에는 묘소에 가서 제문(祭文)을 지어 감회를 술회하기도 하였다. <後漢書 卷51 橋玄列傳> 그 뒤에 조조가 겸손한 태도로 예물을 갖추어 허소(許劭)에게 찾아가서 자기를 평해 달라고 요청하였는데, 허소가 그 인물을 비루하게 여겨 응대하려고 하지 않다가, 마지못해서 강요에 못 이겨 그대는 태평 시대에는 간적이 될 것이고, 난세에는 영웅이 될 것이다.[君淸平之奸賊 亂世之英雄]”라고 대답하니,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떠났다는 내용이 후한서(後漢書) 68 허소열전(許劭列傳)에 보인다.

간원[諫苑] 우지녕(于志寧)이 지은 책 이름이다. 우지녕(于志寧)은 간원(諫苑)을 지어 바르게 구제하는 유익함에 대해 서술하였다. 우지녕(于志寧)은 자()가 중밀(仲謐)이며, 경조(京兆) 사람이다. 정관(貞觀) 3년에 중서시랑(中書侍郞)이 되었다가 태자좌서자(太子左庶子)로 자리를 옮기고, 간원(諫苑)을 지어 올렸으며, 얼마 후에 첨사(詹事)를 겸하였다. 진왕(晉王)이 황태자(皇太子)가 되자 다시 좌서자(左庶子)에 임명되었다.

간원제명기[諫院題名記] ()나라 사마광(司馬光)이 지은 문장 이름인데, 그 내용은 바로 송 진종(宋眞宗) 때에 처음 간관(諫官)을 설치하였고, 인종(仁宗) 때에 와서는 간관 전곤(錢昆)이 이전에 간관 지낸 사람들의 이름을 목판(木板)에 써서 비치해 두었었는데, 그 후 사마광이 오랜 뒤에는 그 글자들이 지워질까 염려하여 이것을 다시 돌에 새기고 그에 관한 내력을 기록한 것이다. 그 내용 중에 뒷사람들이 하나하나 이름을 지적하면서 아무개는 충성스러웠고 아무개는 간사했으며, 아무개는 정직했고 아무개는 정직하지 못했다.’고 할 것이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後之人將歷指其名而議之曰: ‘某也忠, 某也詐, 某也直, 某也曲.’ 嗚呼! 可不懼哉!]”라는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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