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말뚝 / 공광규

큰비에 무너진 논둑을

삽으로 퍼올리는데

흙 속에서 누군가

삽날을 자꾸 붙든다


가만히 살펴보니 오랜 세월

논둑을 지탱해오던

아버지가 박아놓은

썪은 말뚝이다


썩은 말뚝 위로

흙을 부지런히 퍼올려도

자꾸자꾸 빗물에

흘러내리는 흙


무너진 논둑을 다시 쌓기가

세상일처럼 쉽지 않다

아픈 허리를 펴고

내 나이를 바라본다


살아생전 무엇인가 쌓아보려다

끝내 실패한 채 흙 속에

묻힌 아버지를 생각하다

, 하고 운다.


- 공광규 -


시집 <소주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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