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여공학可與共學, 가여공환란불가여공락可與共患難不可與共樂, 가여낙성이불가여려시可與樂成而不可與慮始

가여[嫁與] 시집가다. ‘는 허자(虛字)이다.

가여[嘉與] 함께. 한서(漢書) 무제기(武帝紀)에서 짐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천하에 뜻을 가진 선비들과 함께 이 강장대도(康莊大道), 크고 넓은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랐다.[朕夙興夜寐, 嘉與宇內之士臻於斯路.]”라고 하였다.

가여공학[可與共學] 논어(論語) 자한(子罕)에 공자가 말하기를 함께 배울 수 있어도 함께 도에 나아갈 수 없으며, 함께 도에 나아갈 수 있어도 함께 설 수 없으며, 함께 설 수 있어도 함께 권도를 행할 수 없다.[子曰可與共學, 未可與適道, 可與適道, 未可與立, 可與立, 未可與權.]”라고 하였다.

가여공환란 불가여공락[可與共患難 不可與共樂] 구천(句踐)은 월()나라의 임금으로 제 환공(齊桓公), 진 문공(晉文公), 진 목공(秦穆公), 초 장왕(楚莊王)과 함께 춘추오패(春秋五覇) 중의 한 사람이다. 범려(范蠡)는 춘추 시대 월나라의 대부로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구천은 기원전 494년에 오나라 임금 부차(夫差)와 싸워 대패하자 회계산(會稽山)에서 오나라를 신하로서 섬길 것을 맹세한 뒤 이후 20여 년을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면서 국력을 길러 기원전 473년에 마침내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오나라가 멸망한 뒤 상장군(上將軍)이 된 범려는 대명(大名) 아래에는 오래 머물 수 없다고 생각하고 떠날 것을 결심한 뒤 친구인 대부 문종(文種)에게 편지를 보내 나는 새가 모두 잡히면 좋은 활은 거두어 보관하게 되고 교활한 토끼가 모두 죽으면 사냥개는 삶아지는 법이다. 월왕(越王)은 목이 길고 새의 부리와 같은 입을 가졌으니 환난은 함께 할 수 있지만 즐거움은 함께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대는 어찌 떠나지 않는가.[蜚鳥盡 良弓藏 狡兎死 走狗烹 越王為人 長頸鳥喙 可與共患難 不可與共樂 子何不去]”라고 하였다. 문종은 얼마 뒤에 참소를 받고 구천이 보낸 검으로 자결하였다. 범려는 구천에게 하직 인사를 올린 뒤에 보물들을 싸서 곧장 배를 타고 떠나 제()나라로 갔는데, 제나라에서 치이자피(鴟夷子皮)로 이름으로 바꾸고 수십만 거금의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史記 卷41 越王勾踐世家>

가여낙성[可與樂成] 함께 일의 성공을 즐길 수 있음. 용역상해(用易詳解) 9백성은 성공한 일을 함께 즐길 수는 있으나 시작하는 일을 함께 우려할 수 없으니, 그 일이 오래 진행되기를 기다려야 저절로 안정될 것이다.[民可與樂成 不可與慮始 待其久而自定也]”라고 하였다.

가여낙성이불가여려시[可與樂成而不可與慮始] 보통 사람들과는 함께 성공을 즐길 수 있으나 함께 시작을 도모할 수는 없다는 뜻으로, 전국시대 위()나라의 공족(公族) 출신인 공손앙(公孫鞅: 商鞅상앙)이 진() 효공(孝公)에게 올린 무릇 백성과는 시작을 함께 도모할 수는 없고 성공한 결과만 함께 즐길 수 있으니, 지극한 덕을 논하는 자는 속세와 화합하지 못하고, 큰 공을 성취하는 자는 민중과 함께 의논하지 않는다.[民不可與慮始而可與樂成 論至德者不和於俗 成大功者不謀於衆]”라는 말을 원용한 것이다. <史記 商君列傳><商君書 更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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