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체歌體, 가체금령加髢禁令, 가체신금사목加髢申禁事目, 가초관假哨官, 가초이물夏楚二物

가체[歌體] 서사증(徐師曾)의 시체명변(詩體明辨)에는 정을 풀어서 길게 말하여 잡되고 방정하지 못한 것이 가이다.[放情長言 雜而無方者曰歌]”라고 설명하였다.

❍ 가체[加髢가체(加髢)는 다래또는 다리라고 불리는 여자들의 머리 장식의 하나이다즉 예전에 여인네들이 머리숱이 많아 보이게 하거나 혹은 높고 넓게 보이게 하려고 남의 머리칼을 덧넣어 땋은 머리를 말한다일종의 가발이나 덧머리라 할 수 있다

가체금령[加髢禁令] 가체(加髢)예전에, 여자가 몸단장을 할 때, 머리에 큰머리나 어여머리를 얹는 일이나 그 머리를 이르던 말이다영조실록(英祖實錄) 32(1756) 116일 조에 사족(士族) 부녀자들의 가체를 금하고 속칭 족두리(簇頭里)로 대신하도록 하였다. 가체의 제도는 고려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곧 몽고의 제도이다. 이때 사대부가의 사치가 날로 성하여, 부인이 한 번 가체를 하는 데 몇백 금()을 썼다. 그리고 갈수록 서로 자랑하여 높고 큰 것을 숭상하기에 힘썼으므로, 임금이 금지시킨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때 처음으로 가체 금지령이 나왔는데, 영조 39년에 다시 금령을 내리고 정조 때에도 세 차례나 같은 금령을 내리는 것으로 보아, 풍속이 쉽게 바뀌지 않았던 듯하다.

가체신금사목[加髢申禁事目] 조선(朝鮮) 영조(英祖)와 정조(正祖) 때 부녀자들의 가체가 성행하였다. 정조 12년에 가체 풍속을 금지하고자 가체신금사목(加髢申禁事目)을 제정하였다. 사대부의 부인을 비롯하여 각 계층의 부녀자들의 결발(結髮) 양식을 규정한 사목(事目)이다. 부녀자의 머리에 다리[月子]를 드리는 일이 전국에 유행하게 되어 서로 사치함을 다투게 되고, 다리의 값이 수백금을 호가하게 되니 가난한 사람은 혼례에 쓸 다리도 마련키 어려운 실정이었다. 영조가 이를 엄금했으나 정조 때에 다시 성행했으므로 이를 다시 엄금한 것이다.

가초[夏楚] 싸리나무 종류로서 회초리로 쓰는 것인데, 둥근 모양 그대로 쓰는 것을 가()라 하고, 네모지게 다듬어 쓰는 것을 초()라 한다. 예기(禮記) 학기(學記)(() 두 물건은 위엄을 세우기 위한 것이다.[夏楚二物, 收其威也.]”라고 하였다.

가초관[假哨官] 임시로 선발한 초관이다. 초관은 군대 1()를 거느리는 종3품의 무관으로, 각 군영(軍營)의 위관(尉官)의 하나이다.

가초이물[夏楚二物] 예기(禮記) 경문(經文)개오동나무 회초리와 가시나무 회초리 두 물건은 그 위의(威儀)를 수렴하는 것이다.[·楚二物, 收其威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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