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견보架漏牽補, 가류苛留, 가류아상可流我觴, 가륭嘉隆, 가륭加隆

가루[家累] 가족을 이른다.

가루견보[架漏牽補] 새는 곳을 막고 해진 데를 기움. 틈이 난 곳을 얽어 막고 뚫어진 곳을 잡아 당겨서 때운다는 뜻으로, 당장에 급한 사태를 임시변통으로 둘러 맞춰서 잠시 해결함을 이르는 말이다. ()나라 두보(杜甫)의 가인(佳人) 시에 시비는 구슬 팔아 양식 사서 돌아오고, 덩굴 끌어와 띠 지붕 기운다네.[侍婢賣珠迴 牽蘿補茅屋]”라는 구절이 보인다. 이 시는 당숙종(唐肅宗) 건원(乾元) 2(759) 두보 나이 48세 때 쓰인 것으로, 안사(安史)의 난을 만난 미인의 궁색한 처지를 읊은 것이다.

가류[苛留] 심하게 사람을 못 가게 함을 말한다.

가류아상[可流我觴] 소식(蘇軾)의 택승정명(擇勝亭銘)우리 손님에게 술을 권할 수도 있고 내 술잔을 흘려보낼 수도 있다.[可侑我客 可流我觴]”고 하였다. 강가에서 손님들에게 술을 권하고 강물에 잔을 띄워 손님에게 술잔을 보내는 유상곡수(流觴曲水)의 놀이를 즐길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가류아상(可流我觴)은 유상곡수(流觴曲水)에서 인용한 말인데, 고리처럼 돌아 굽이쳐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워놓고 그 술잔이 자기 앞에 오기 전에 시()를 짓고 술잔을 들어 마시는 풍류(風流)를 이른다. 이는 본래 고대(古代)의 풍속으로 매년 3월 첫 사일(巳日)(삼국시대 이후에는 삼월 삼짇날) 물가에서 잔치를 벌이고,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이를 마시면서 액막이를 하던 놀이였는데, 후대에 문인(文人)들이 이 놀이를 하면서 유상곡수(流觴曲水)라 불렀다. ()나라 때 왕희지(王羲之)가 삼월 삼짇날에 당대의 명사 41명과 함께 회계(會稽) 산음(山陰)에 있는 난정(蘭亭)에 모여 유상곡수(流觴曲水)를 즐기고 이를 난정기(蘭亭記)에 남겨 천고(千古)의 풍류로 널리 알려졌다.

가륙[賈陸] 가륙은 서한의 학자이자 경세가였던 가의(賈誼)와 육가(陸賈)를 병칭한 말이다.

가륭[嘉隆] 가정(嘉靖)과 융경(隆慶)을 병칭한 것이다. 가정은 명 세종(明世宗)의 연호이고 융경은 명 목종(明穆宗)의 연호인데, 대개 16세기 전반을 가리킨다. 이 시기에는 후칠자(後七子), 즉 명나라 후기의 일곱 재자(才子)들이 활약하였고, 이에 앞서 명나라 효종(孝宗)의 홍치(弘治) 연간부터 무종(武宗)의 정덕(正德) 연간까지는 전칠자(前七子), 즉 명나라 전기의 일곱 재자들이 활약하였다. 전칠자는 이몽양(李夢陽), 하경명(何景明), 서정경(徐禎卿), 변공(邊貢), 강해(康海), 왕구사(王九思), 왕정상(王廷相)이고, 후칠자는 이반룡(李攀龍), 왕세정(王世貞), 사진(謝榛), 종신(宗臣), 양유예(梁有譽), 서중행(徐中行), 오국륜(吳國倫)이다. 이상의 전칠자, 후칠자는 모두 복고(復古)를 주장하여 문()은 진한(秦漢), ()는 성당(盛唐)의 격조를 숭상하였던바, 이몽양의 잠규산인기(潛虯山人記)에 의하면 송나라에는 시가 없었다.[宋無詩]”라고 말했거니와, 그 밖의 명인(明人)들에게서도 송나라에 시가 없었다는 말을 흔히 볼 수 있다. <空同集 卷48>

가륭[加隆] 가융. 융숭한 예()를 가한다는 뜻으로, 부모의 삼년상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예기(禮記) 삼년문(三年問)그렇다면 어찌하여 삼년으로 하는가? 융숭한 예를 가하려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然則何以三年也 曰加隆焉爾也]”라는 말에서 연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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