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의초천賈誼超遷, 가의치안책賈誼治安策, 가의통곡賈誼痛哭, 가이斝彝, 가이락기可以樂飢

가의초천[賈誼超遷] 가의는 한()나라 때의 재사(才士)로서 시문에 뛰어나고 제자백가에 정통하여 문제(文帝)의 총애를 받았으며, 약관(弱冠)에 역대 최연소 박사가 되고 다시 1년 만에 태중대부(太中大夫)가 되었다.

가의치안책[賈誼治安策] 가의(賈誼)는 서한(西漢) 낙양(洛陽) 사람으로 문제(文帝) 때 박사(博士)와 태중대부(太中大夫) 등을 역임하였다. 치안책(治安策)은 당시 동성(同姓) 제후(諸侯)들이 강성하여 황제(皇帝)의 권력이 약화된 폐단을 지적한 내용으로, 문제(文帝)는 가의(賈誼)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여 제후들의 세력을 약화시켰다. 치안(治安)은 나라를 잘 다스려 편안하게 함을 이른다. 가의(賈誼)가 문제(文帝)에게 올린 상소문(上疏文) 가운데 옛날 은()나라와 주()나라는 나라를 소유하여 천여 년 치안(治安)을 잘하였다.”라고 하였다.

가의치안책[賈誼治安策] 가의는 한 문제(漢文帝) 때 하남 태수(河南太守) 오공(吳公)의 천거로 20여 세에 등용된 지 1년 만에 파격적으로 승진하여 태중대부(太中大夫)에까지 올랐다. 그는 문제에게 변방의 소란 및 내부의 불안정한 상황 등 시국(時局)을 구제하기 위해 치안책(治安策)을 올리면서 일의 형세를 살피건대 통곡할 만한 것이 한 가지요, 눈물을 흘릴 만한 것이 두 가지요, 장탄식할 만한 것이 여섯 가지이다.[竊惟事勢 可爲痛哭者一 可爲流涕者二 可爲長太息者六]”라고 전제한 다음, 정치의 득실을 일일이 예를 들어 진달(進達)하였다. <史記 卷84 屈原賈生列傳> <漢書 卷48 賈誼傳>

가의통곡[賈誼痛哭] 가의(賈誼)는 서한(西漢) 낙양(洛陽) 사람이다. 18세 때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능히 외우고 문장을 잘 지어 재사(才士)로 이름났다. 하남군수(河南郡守) 오공(吳公)이 한() 문제(文帝)에게 천거하여 20여 세에 등용되어 박사(博士)가 되었고, 곧 태중대부(太中大夫)로 승진하여 정삭(正朔)을 바꾸고 예악(禮樂)을 일으킬 것을 건의하였다. 그는 문제에게 변방의 소란 및 내부의 불안정한 상황 등 시국(時局)을 구제하기 위해 비통한 심정으로 치안책(治安策)을 올리면서 삼가 현재의 상황을 살펴보건대, 통곡할 만한 일이 한 가지요, 눈물을 흘릴 만한 일이 두 가지요, 장탄식할 만한 일이 여섯 가지입니다.[竊惟事勢 可爲痛哭者一 可爲流涕者二 可爲長太息者六]”라고 전제한 뒤에 하나씩 설명한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48 賈誼傳>

가이[可以] ~할 수 있다. ~할 가치가 있다. ~해도 좋다. ~해도 된다.

가이[駕輀] 상여수레이다.

가이[斝彝] 육이(六彛)의 하나. 벼 그림을 그린 술그릇으로 제사 때 사용하였다.

가이동가이서[可而東可而西] 동쪽이라도 좋고 서쪽이라도 좋다. 이러나저러나 상관없다.

가이동가이서[可以東可以西] 가동가서(可東可西). 이렇게 할만도 하고 저렇게 할만도 함.

가이락기[可以樂飢] 굶주림을 즐길만 함. 시경(詩經) 형문(衡門)형문의 아래에, 노닐고 쉴 수 있도다. 샘물이 졸졸 흐름이여, 굶주림을 즐길 수 있도다.[衡門之下, 可以棲遲. 泌之洋洋, 可以樂飢.]”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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