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도멸괵假途滅虢, 가도벽립家徒壁立, 가도불賈島佛, 가도어인 탁숙어의假道於仁 託宿於義

가도멸괵[假途滅虢] 우국(虞國)의 길을 빌려 괵국(虢國)을 멸(). ()는 빌린다는 뜻이다. ()는 길이다. ()은 망한다는 뜻이다. ()은 나라 이름이다. ()나라 헌공(獻公)이 괵()나라를 치려하였는데 길이 우()나라를 지나게 되었다. 모신(謀臣) 순식(荀息)의 계책을 써서 수극(垂棘)에서 생산된 구슬과 굴()에서 생산된 말을 우()나라 임금에게 보내어 길을 빌려서 괵나라를 멸망시켰다. 그리고는 군대가 돌아오다가 우나라를 아울러 습격하여 멸망시켰다.

가도멸괵[假道滅虢] 길을 빌려 괵나라를 멸함. 다른 나라의 길을 임시(臨時)로 빌려 침략로(侵略路)로 쓰다가 나중에 그 나라마저 쳐서 없앰. 군사계획의 의도를 숨기기 위한 구체적 수단으로 쓰이는 계책이다. 진헌공(晉獻公)이 우()나라의 길을 빌려 괵()나라를 멸()한 고사(故事)에서 유래(由來)하였다. 춘추 시대 ()나라와 우()나라를 정복(征服)하려는 야심을 가졌던 진()나라가 순식(荀息)의 계책으로 먼저 멀리 있는 괵()나라를 칠 계획을 세우고, 진 나라의 굴() 땅에서 나는 말 네 마리를 우() 나라에 주고 괵() 나라를 치러 가는 길을 빌려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우공이 말을 탐내어 길을 빌려 주고서 진 나라의 선봉이 되어 괵 나라를 쳤는데, 괵 나라가 함락된 뒤에 우 나라도 진 나라에 의해 멸망되었다. <春秋左傳 僖公 2> 서로 이해관계가 밀접해 한 쪽이 망하면 다른 한 쪽도 화를 면하기 어려움을 이르는 말. 또는 서로 도우며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 서로 도움으로써 성립되는 관계를 비유하기도 한다. ()은 주문왕(周文王)의 아우인 괵중(虢仲)이 세운 나라로 평왕(平王)이 동쪽으로 수도를 옮길 때 서괵으로 옮겼다가 진나라에 의해 멸망되었다. 이야기는 바로 괵이 진나라에 의해 망할 때 나온 것이다. 가도멸괵(假途滅虢).

가도벽립[家徒壁立] 집안에 세간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고, 다만 사면에 별만 둘러서있을 뿐이라는 뜻으로, 집안 살림이 심()히 가난하고 구차(苟且)함을 이르는 말이다.

가도불[賈島佛] 가도(賈島)는 당() 나라 시인으로, ()는 낭선(浪仙), 호는 갈석산인(碣石山人), 승려가 되어 이름을 무본(無本)이라 하였다. () 나라 이동(李洞)이 가도의 시()를 사모하여 그 상()을 주조(鑄造)해 모시고 늘 가도불(賈島佛)이라고 염송했다는 고사가 있다. <唐書 卷176> <齊東野語 16 賈島佛>

가도비가상[可道非佳賞] 본디 형언할 수 있다면 진정으로 좋은 경치가 아니다.’라는 말이다. 노자(老子)()를 도()라고 말할 수 있다면 항구불변의 도()가 아니다.[道可道 非常道]”라는 말의 구법(句法)을 활용한 표현이다.

가도사[椵島事] 가도(椵島)의 일. 가도는 평안북도 철산군(鐵山郡)에 속한 섬이다. 모문룡(毛文龍)이 명나라의 요동 도사(遼東都司)로서 1621년 청 태종(淸太宗)이 요양(遼陽)을 공격하여 함락시키자 요동에서 쫓겨 의주(義州)로 와서 이듬해 가도에 진을 쳤는데 조선과 명, 그리고 청의 틈에서 움직여 관계가 미묘해지자 1627년 청이 몰아냈으나 청군이 철수하자 다시 가도에 웅거하고 약탈을 하였다. 1629년에 명의 요동 경략 원숭환(袁崇煥)이 그를 쌍도(雙島)로 유인하여 죽임으로써 가도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가도사벽[家徒四壁] 집안 형편(形便)이 매우 어려워서 살림이라고는 네 벽밖에 없다는 뜻으로 몹시 가난한 살림을 이르는 말이다. 가도벽립(家徒壁立). 가도벽립(家道壁立).

가도삭의[家道索矣] 집안의 도리가 무너짐. ()은 무너진다는 뜻이다. 원래 서경(書經목서(牧誓)에 나오는 말이다.

가도어인 탁숙어의[假道於仁 託宿於義] ()의 길을 잠시 빌리고 의()의 집에 잠시 의탁함. ()을 길에 비유하고 의()를 집에 비유했다. 맹자(孟子) 이루 하(離婁 下)에서는 인은 사람이 편안히 쉴 집이고 의는 사람이 걸어가야 할 올바른 길이다.[仁 人之安宅也 義 人之正路也]”라고 표현하여 반대로 인()을 집에 견주고 의()를 길에 비유했다. (宿)은 하룻밤 묵는 것으로 여기서는 잠시 의탁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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