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득이불가견可得而不可見, 가등賈鄧, 가라수加羅守, 가락嘉樂, 가락시假樂詩, 가란柯爛,

가득산[加得山] 고츠산맥(Ghats)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어 동고츠산맥과 서고츠산맥으로 나뉜다. 직방외기(膱方外紀)인제아(印弟亞 인도)에 있는 가득산(加得山)은 남과 북으로 그 반을 나누어 남쪽은 입하(立夏)에서 추분(秋分)까지는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이 없으나 간혹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찾아볼 수 없고 모진 더위를 견딜 수 없다. 그러나 날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서 그 더위를 식혀 주는데 그 바람이 사시(巳時)에서 신시(申時)까지는 바다 서쪽에서 불어오고 해시(亥時)에서 인시(寅時)까지는 육지 동쪽에서 불어온다. 기이(奇異)한 초목(草木)은 이루 셀 수 없이 많다.”고 하였다.

가득이불가견[可得而不可見] 터득할 수는 있지만 볼 수는 없음. 곧 마음으로 터득할 수는 있지만 눈으로 볼 수는 없다[可心得而不可目見]는 뜻이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대저 도에는 정이 있고 미쁨이 있으나, 행위도 없고 형상도 없다. 그래서 마음으로 전할 수는 있으나 받을 수는 없고, 체득할 수는 있으나 볼 수는 없다.[夫道有情有信 無爲無形 可傳而不可受 可得而不可見]”라고 한 데서 보인다.

가득추[可得追] 따라잡을 수 있을까? 따라잡을 수 없다는 부정의 뜻을 가진 반문이다.

가등[賈鄧] 가등은 광무제(光武帝) 초기의 명장인 가복(賈復)과 등우(鄧禹)를 합칭한 것이다. 가복은 일찍이 광무제를 도와 청독군(靑犢軍)을 크게 격파하여 큰 공훈을 세우고서 대장군(大將軍)과 도호장군(都護將軍)을 역임하고, 교동후(膠東侯)에 봉해졌다. 등우는 본래부터 광무제와 친교(親交)가 있었는데 광무제를 도와서 천하를 평정하여 벼슬이 대사도(大司徒)에 이르렀고, 운대 이십팔장(雲臺二十八將) 가운데 제일공신(第一功臣)이 되었다.

가등[加等] 품계(品階)를 올려주는 것을 말한다.

가라수[加羅守] 가라의 수령이라는 뜻이다. 가라는 가라홀(加羅忽)의 준말로, 고구려(高句麗) 때의 간성의 명호(名號)이다.

가락[可樂]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소식(蘇軾)의 초연대기(超然臺記)라는 글에서 어떤 사물에든 모두 볼만한 것들이 있고, 볼만한 것들에게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반드시 괴이하거나 신기하거나 우람하거나 유난히 아름다울 것까지는 없다.[凡物皆有可觀, 苟有可觀, 皆有可樂, 非必怪奇偉麗者也]라고 하였다.

가락[嘉樂] 가락(假樂)으로 쓰기도 한다. 시경(詩經) 가락(假樂)아름답고 즐거운 군자여, 드러나고 드러난 훌륭한 덕이로다. 백성에게 마땅하고 신하에게 마땅하니, 하늘에서 복록을 받는구나. 보호하고 도우며 명하시고, 하늘로부터 거듭 베풀어지도다.[嘉樂君子 顯顯令德 宜民宜人 受祿于天 保佑命之 自天申之]”라고 하였다.

가락시[假樂詩] 가락은 시경(詩經) 대아(大雅)의 편명으로 녹을 구하고 백복(百福)을 얻은지라 자손이 천()이며 억()이로다. 목목하고 황황하여 제후에게 마땅하고 천자에게 마땅하다.[干祿百福 子孫千億 穆穆皇皇 宜君宜王]”고 하였다.

가란[柯爛] 남조(南朝) ()나라 임방(任昉)의 술이기(述異記)()나라 때 왕질(王質)이 신안군(信安郡)의 석실산(石室山)에 나무하러 갔다가 동자 여럿이 바둑을 두며 노래를 부르고 있어 그것을 구경하다가 대추씨만 한 것을 주기에 먹었더니 시장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윽고 왕질이 일어나 보니 도끼 자루가 다 썩어 버렸고, 마을로 돌아오니 아는 사람들은 모두 죽고 없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가란[柯爛] 난가(爛柯). 난가일몽(爛柯一夢). 세월이 덧없음을 뜻한다. ()나라 때 왕질(王質)이 나무를 하러 석실산(石室山)에 들어갔다가 동자(童子) 두어 사람이 바둑을 두며 노래하는 것을 보고 구경을 하노라니, 한 동자가 대추 씨 같은 것을 주므로 그것을 먹고는 배고픈 줄도 잊고 있었다. 이윽고 동자가 왕질에게 말하기를 네 도끼 자루가 이미 다 썩어 버렸다.[汝斧柯爛矣]”라고 하므로, 왕질이 일어나서 보니 과연 자기의 도끼 자루는 이미 다 썩어 버렸다. 집에 돌아가 보니 이미 자기가 아는 사람은 세상에 하나도 없게 되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述異記 卷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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