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로曷懶路, 갈량려葛亮廬, 갈력배지竭力排之, 갈력위선즉국가근안竭力爲善則國家僅安, 갈력치신竭力致身

갈라로[曷懶路] 갈라전(曷懶甸)을 말한다. 갈라전의 위치에 대해서는 함흥평야(咸興平野) 일대라는 설이 있으나, 대체로 길주(吉州) 이북(以北)에서 두만강 일대를 포괄하는 지역이었으며, 치소(治所)는 경성(鏡城)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갈라봉[葛蘿峯] 안동시 남선면과 의성군 단촌면에 걸쳐 있는 갈라산(葛蘿山)이다.

갈량귀화서유편[葛亮貴和書有篇] 진수(陳壽)가 편찬한 삼국지(三國志) 중 촉서(蜀書) 제갈량전(諸葛亮傳)에 제갈씨집목록(諸葛氏集目錄)이 실려 있는데 24개 편명(篇名) 중 열한 번째 귀화편(貴和篇)을 가리킨다. 귀화는 조화를 귀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갈량려[葛亮廬] 갈량은 제갈량(諸葛亮)을 가리킨 것인데. 양양(襄陽)의 융중(隆中)에서 초려(草廬)에 살았으므로 이른 말이다. 후한(後漢) 말에 제갈량(諸葛亮)이 남양(南陽) 융중(隆中) 땅에서 초옥(草屋)을 짓고 농사지으며 은거하고 있다가, 세 번이나 그곳을 찾아온 유비(劉備)의 정성에 감동하여 세상에 나와 촉의 승상이 되었다. 삼고초려(三顧草廬). <三國志 卷35 蜀書 諸葛亮傳>

갈력배지[竭力排之] 힘을 다해 배척함을 이른다. 통감절요(通鑑節要) 당기(唐紀)처음에 이덕유(李德裕)가 집정(執政)할 적에 백민중(白敏中)을 추천하여 한림학사(翰林學士)로 임명하였는데, 무종(武宗)이 승하하고 이덕유가 세력을 잃자, 백민중이 그에 대한 상하(上下)의 노여움을 틈타서 힘을 다해 이덕유를 배척하였다.[, 李德裕執政, 引白敏中爲翰林學士, 及武宗崩, 德裕失勢, 敏中乘上下之怒, 竭力排之.]”라고 한 데서 보인다.

갈력위선즉국가근안 교타사종즉일신불보[竭力爲善則國家僅安 驕惰奢縱則一身不保] 군주가 나라를 다스림에 힘을 다하여 선()을 행하면 국가가 겨우 편안하고, 교만하고 게으르고 사치하고 방종하면 제 몸 하나도 보전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통감절요(通鑑節要) 당기(唐紀), () 태종(太宗)이 태자에게 너는 나와 같은 공로가 없으면서 나의 부귀를 이어받았으니, 힘을 다하여 선을 행하면 국가가 겨우 편안할 것이요, 교만하고 게으르고 사치하고 방종하면 제 몸 하나도 보전하지 못할 것이다. 또 성공은 더디고 실패는 빠른 것은 나라이고 잃기는 쉽고 얻기는 어려운 것은 지위이니, 아끼지 않을 수 있으며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汝無我之功勤, 而承我之富貴, 竭力爲善則國家僅安, 驕惰奢縱則一身不保. 且成遲敗速者, 國也. 失易得難者, 位也. 可不惜哉, 可不愼哉.]”라고 한 데서 보인다.

갈력치신[竭力致身] 논어(論語) 학이(學而)에 자하(子夏)가 말하기를 어진 이를 어질게 여기되 여색을 좋아하는 마음과 바꾸며, 부모를 섬기되 그 힘을 다할 수 있으며, 임금을 섬기되 그 몸을 바칠 수 있으며, 벗과 사귀되 말함에 성실함이 있으면 비록 배우지 않았다고 말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배웠다고 이를 것이다.[賢賢易色 事父母 能竭其力 事君 能致其身 與朋友交 言而有信 雖曰未學 吾必謂之學矣]”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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