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창賈昌, 가창로백葭蒼露白, 가창조賈昌朝, 가책呵責, 가책枷責, 가책순광賈策郇筐

가창[賈昌] 당 현종(唐玄宗)이 닭싸움을 좋아하여 계방(雞坊)을 설치한 뒤 소아(小兒) 5백 인을 뽑아 웅계(雄雞)를 훈련시키도록 하였는데, 특히 일곱 살짜리 가창(賈昌)이란 소년이 닭의 말을 알아듣고 취급을 잘 하였으므로 크게 총애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당 나라 진홍(陳鴻)이 지은 전기(傳奇) 소설인 동성노부전(東城老父傳)에 실려 있다. 동성노부전은 가창(賈昌)이라는 주인공을 통해 당나라 현종 연간의 흥망성쇠를 묘사하였다. 가창이 어려서 운룡문(雲龍門) 길옆에서 나무로 만든 닭[木鷄]을 가지고 놀다가 현종에게 발탁되어 입궁하여 현종의 총애를 입고 화려한 궁중 생활을 하며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안사(安史)의 난에 휘말려 세상을 떠돌고 끝내는 출가하여 승려가 된다는 줄거리이다.

가창로백지시[葭蒼露白之詩] 이는 시경(詩經) 겸가(蒹葭)갈대는 푸르디 푸르고 이슬은 하얗게 서리가 되었네. 바로 그분이 강 저편에 있네.[蒹葭蒼蒼 白露爲霜 所謂伊人 在水一方]”로 시작되는 시로, 먼 곳에 있어 만날 수 없는 벗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가창조[賈昌朝] () 개봉(開封) 사람이다. 자는 자명(子明), 시호는 문원(文元)이다. 북송 때의 어문학자로 예부운악(禮部韻樂)을 편찬하였고 절운계운서(切韻系韻書)를 집대성하였다. 진종(眞宗) 때 진사(進士)에 급제하여 국자감설서(國子監說書)를 지낸 뒤에 참지정사(參知政事추밀사(樞密使동평장사겸추밀사(同平章事兼樞密使)를 역임하였으며, 위국공(魏國公)에 봉해졌다. 박식하고 논변을 잘하였다. 군경음변(群經音辨통기(通紀본조시령(本朝時令주의(奏議) 및 문집 등이 있다.

가책[枷責] 가책(枷責)은 죄수에게 칼을 씌우고 또 형장(刑杖)을 치는 것이다()는 가호(枷號)와 같은 말로, 죄인에게 칼을 씌워 대중에게 죄상을 공개하는 것을 가리키며, 죄의 경중에 따라 그 기간을 다르게 적용하였다. ()는 마른 나무[乾木]로 만들되 길이는 3자이고, 구멍의 지름은 29치이며, 무게는 25근이었다. ()은 책타(責打)와 같은 말로, 죄인을 형구(刑具)로 치는 것을 가리킨다

가책[呵責] 이 말은 원래 불교에서 스님들이 수행하다 잘못을 저지르면 여러 스님들 앞에서 죄를 낱낱이 고하고 거기에 합당한 벌을 받는 것을 말한다. 꾸짖어 책망한다는 뜻을 가진 가책은 요즘은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양심의 가책이 된다같은 경우에 사용하고 있다.

가책순광[賈策郇筐] 한 문제(漢文帝) 때에 가의(賈誼)가 치안책(治安策)이라는 시국 구제책을 올렸으며, () 나라 때에 순모(郇謨)가 정권을 농단하는 원재(元載)를 상복을 입고 탄핵하였더니, 임금이 그를 불러 어의(御衣)를 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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