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부각궁嘉樹賦角弓, 가수부시假手賦詩, 가수전嘉樹傳, 가수천신嘉樹遷臣, 가수편嘉樹篇

가수부각궁[嘉樹賦角弓] 각궁편(角弓篇)은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으로, 이 시는 임금이 소인들의 참소하는 말만 듣고 친족들을 멸시하므로, 친족들이 임금을 원망하여 부른 노래이다. 즉 춘추 시대 진()나라 한선자(韓宣子)가 노() 나라에 사신 갔을 때 노 나라 소공(昭公)이 베푼 향연에서 각궁편을 부르고, 이어 노 나라 계무자(季武子)의 집에서 베푼 주연에 참석했을 때 그 집에 아름다운 나무가 있으므로 한 선자가 이를 좋다고 칭찬하자, 계무자가 말하기를 제가 이 나무를 잘 길러서, 선생께서 각궁편을 노래해 주신 정을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左傳 昭公二年>

가수부시[假手賦詩] 남의 손을 빌어 시를 짓다. 수서(隋書) 유현전(劉炫傳)유현(劉炫)은 자신의 상태에 대해 말하기를 공사(公私)간에 작성한 문장이나 서간에는 일찍이 남의 손을 빈 것이 없었다.”고 하며, 사통(史通) 재문편(載文篇), 위진(魏晉)시대 이래 거짓으로 썼거나 덧붙여 쓴 잘못이 다섯 가지가 있는데 그 세 번째가 남의 손을 빌어 쓰기[假手]’라고 하였다. 엽소태(葉紹泰)육조시대의 문장은 오직 양()나라 때에만 성황을 이루었다 할 만한데, 유한 귀족자제들이 조정 선비들의 수치거리였던 것은 이 명인집(名人集) 속에도 남이 대신해서 지은 작품이 많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가수전[嘉樹傳] 춘추 시대 진()나라 한선자(韓宣子)가 노()나라로 빙문(聘問) 가서 시경(詩經) 각궁(角弓)을 읊었다. 그리고 계무자(季武子)의 집에서 연회를 베풀 때 뜰에 한 그루 좋은 나무가 있는 것을 보고 한선자가 찬미하니, 계무자가 (宿)이 감히 이 나무를 잘 길러서 각궁 시를 잊지 않고 기억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宿敢不封殖此樹 以無忘角弓]”라고 하고는 시경(詩經)의 감당(甘棠)을 외웠다. 이에 한선자가 ()는 감당할 수 없으니, 소공(召公)에는 도저히 미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두보(杜甫)겨울날 이백을 생각하며[冬日有懷李白]’가수라 한 좌전(左傳)을 다시 찾으며 각궁이란 시를 잊지 않노라.[更尋嘉樹傳, 不忘角弓詩.]”라고 하였다.

가수지신[可羞之信] 춘추좌전(春秋左傳) 은공(隱公) 3년 조에 진정 참된 신의만 있다면[苟有明信], 산골짜기의 냇물이나 못가의 수초(水草)와 같은 것이라도, 왕공에게 바칠 수 있는 것이다.[可羞於王公]”는 말을 압축해서 인용한 것이다.

가수천신[嘉樹遷臣] 가수(嘉樹)는 아름다운 나무란 뜻이다. 천신(遷臣)은 원지(遠地)에 유배된 신하를 말하는 것으로, 전국 시대 초 회왕(楚懷王)의 충신 굴원(屈原)을 가리킨다. 굴원이 일찍이 소인들의 참소를 입어 조정에서 쫓겨나 상강(湘江) 가를 방황하다가 끝내 상강에 몸을 던져 자결하였던바, 그가 지은 귤송(橘頌)후황이 아름다운 나무 좋아하매 귤이 와서 자라니, 강남에 명을 받고 생장하여 다른 데로 옮겨 가지 않네.……층층 가지에 가시는 뾰족뾰족 둥근 과실은 동실동실, 청황색 뒤섞이어 무늬가 찬란도 하구나. 고운 빛에 속은 희어 도를 감당할 만하여라, 성대히 좋은 모습 수식하여 추악하지 않도다.[后皇嘉樹, 橘徠服兮. 受命不遷, 生南國兮.……曾枝剡棘, 圓果槫兮. 靑黃雜糅, 文章爛兮. 精色內白, 類任道兮. 紛縕宜脩, 姱而不醜兮.]”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楚辭 九章> 이 귤송(橘頌)은 본디 강남 사람으로 정명(精明)하고 결백(潔白)한 뜻을 지닌 굴원이 자신을 귤에 빗대서 한탄한 노래이다.

가수편[嘉樹篇] 가수는 아름다운 나무를 말하고, 편은 곧 옛글이라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춘추 시대 진() 나라 한선자(韓宣子)가 노() 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소공(昭公)이 선자에게 향연을 베풀 적에 선자가 양국이 서로 화친하기를 희망하는 뜻에서 시경(詩經) 소아(小雅) 각궁(角弓)의 시를 노래했는데, 이윽고 다시 계무자(季武子)의 주연에 참석해서는 정원에 서 있는 아름다운 나무를 보고 좋다고 칭찬하자, 계무자가 말하기를 숙이 감히 이 나무를 잘 길러서 각궁편을 노래해 주신 당신의 은혜를 깊이 새기지 않겠습니까.[宿敢不封殖此樹以無忘角弓]”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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