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녕금람甘寧錦纜, 감녕능통甘寧凌統, 감노일배監奴一拜, 감눈甘腝, 감능칙교甘凌飭敎

감녕[甘寧] 삼국 시대 오 나라 사람으로, 처음에는 황조(黃祖)를 섬기다가 뒤에 손권(孫權)을 섬기면서 주유(周瑜)를 도와서 적벽(赤壁)에서 위병(魏兵)을 격파하였는데, 활을 아주 잘 쏘았으며, 강표호신(江表虎臣)이라 불리워졌다. <三國志 卷五十五>

감녕금람[甘寧錦纜] 감녕(甘寧)은 오() 나라 손권(孫權)의 장수인데, 일찍이 금람(錦纜)으로 풍석[]을 만들었다. 금람(錦纜)은 금람아장(錦纜牙檣)의 준말로 비단 닻줄과 상아 돛대라는 뜻으로 화려한 놀잇배를 가리킨다. 참고로, 삼국 시대 오()나라 감녕(甘寧)출입할 때 땅에서는 거기를 늘어놓고 물에서는 경주를 잇대었다. 그를 시종하는 사람들이 비단옷을 입어서, 가는 곳마다 도로를 환히 비췄다. 그리고 머무를 때에는 항상 비단 줄로 배를 묶었는데, 떠날 때에 간혹 잘라 버리고 가면서 호사를 과시하기도 하였다.[其出入 步則陳車騎 水則連輕舟 侍從被文繡 所如光道路 住止常以繒錦維舟 去或割棄以示奢也]”는 기록이 삼국지(三國志) 55 오서(吳書) 감녕전(甘寧傳)의 주석에 보인다.

감녕능통[甘寧凌統] 감녕(甘寧)과 능통(凌統)은 후한 말 손권(孫權) 휘하의 장수들이다. 감녕이 손권의 부하가 되기 전에 능통의 아비 능조(凌操)를 죽인 일이 있어, 능통은 감녕을 원수로 여겼다. 얼마 후에 감녕이 손권 휘하에 들자, 손권은 능통에게 감녕을 원수로 대하지 말라고 명하였다. <三國志 卷55 吳書 甘寧傳><資治通鑑 卷65 漢紀57>

감노[監奴] 가노(家奴)의 우두머리를 말한다.

감노불감언[敢怒不敢言] 성은 나되 말로 나타낼 수가 없음. 화가 나도 감히 말은 못함.

감노일배[監奴一拜] 후한 영제(靈帝) 때에 환자(宦者) 장양(張讓)이 중상시(中常侍)로 자리를 옮기고 열후(列侯)에 봉해졌다. 부풍(扶風) 사람 맹타(孟佗)가 장양의 감노(監奴)와 하인들을 극진히 대접하며 선물을 많이 주었다. 감노가 그의 소원을 물으니, 맹타가 말하기를 나의 소망은 너희들이 나에게 절 한 번 해 주는 것이다.[吾望汝曹爲我一拜耳]”라고 하였다. 장양에게 청탁하려는 빈객들이 잔뜩 모였을 때 맹타가 뒤늦게 도착하자, 감노가 하인들을 이끌고 맹타에게 절을 하며 모시고 들어오니, 빈객들이 장양보다 더 위세가 있다고 생각하고는 맹타에게 다투어 뇌물을 바쳤다. 이에 맹타가 그 뇌물을 장양에게 나누어 주니, 장양이 크게 기뻐하여 맹타를 양주자사(凉州刺史)로 삼았다. <後漢書 卷78 張讓列傳>

감눈[甘腝] 음식물이 맛있고 부드럽다. 광운(廣韻)()이란 고기가 무르다의 뜻이다. 독음이 ()’과 같다. ()’이나 ()’과 독음이 같다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하였다. 안씨가훈(顔氏家訓) 8편 면학(勉學)미처 父母를 봉양할 줄 모르던 이라도 옛사람들이 부모의 심중을 미리 살펴 그 뜻을 받들고 온화한 목소리로 숨을 낮추며 수고로움을 꺼리지 않고 신선하고 부드러운 음식을 갖다드리는 모양을 보게 된다면, 두렵고 부끄러워져서 그도 일어나 그렇게 행하고자 할 것이다.[未知養親者, 欲其觀古人之先意承顔, 怡聲下氣, 不憚劬勞, 以致甘腝, 惕然慙懼, 起而行之也.]”라고 한 데서 보인다.

감능칙교[甘凌飭敎] 감녕(甘寧)과 능통(凌統)은 모두 중국의 삼국시대(三國時代) ()나라 손권(孫權)의 부하 장수인데, 이에 앞서 감녕이 손권의 부하가 되기 전에 능통의 아비 능조(凌操)와 대적(對敵)해 싸우다가 능조를 쏘아 죽였기 때문에 능통이 늘 원수로 여겨 감녕을 죽여 복수(復讎)하려 하였는데, 둘 다 손권의 부하가 된 다음에 손권이 불러다가 화해시킨 일이 있었는데, 이 일을 인용하여 개유한 칙교(飭敎)를 말한다. <三國志 卷55 吳書 甘寧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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