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훼률매嘉卉栗梅, 가훼지행可毁之行, 가휘賈徽, 가흥[佳興, 가흥지부嘉興知府, 가흥창可興倉

가훼[嘉卉] 좋은 초목이다.

가훼률매[嘉卉栗梅] 시경(詩經) 사월(四月)산에 아름다운 초목 있으니, 밤나무와 매화나무로다. 변하여 잔포한 도적이 되니, 그 뉘의 허물인지 알지 못하도다.[山有嘉卉 侯栗侯梅 廢爲殘賊 莫知其尤]”라고 하였다.

가훼지행[可毁之行] 헐뜯음을 당할 만한 행실이다.

가휘[賈徽] 후한 때 사람이다. 유흠(劉歆)에게 좌씨춘추(左氏春秋)를 배우고 겸하여 국어(國語)와 주관(周官)을 익혔다. 또 고문상서(古文尙書)를 도운에게서 배우고 모시(毛詩)를 사만경(謝曼卿)에게서 배워 좌씨조례(左氏條例) 20편을 지었다. <後漢書 卷66>

가흥[佳興] 재미로움. 고상한 취미. 고아한 흥취. 멋있는 흥. 좋은 흥취(興趣). 마음속으로부터 느껴지는 좋은 흥취. 마음속으로부터 느껴지는 재미있는 흥취. 가취(佳趣).

가흥[可興] 남한강 상류 창()의 소재지.

가흥지부[嘉興知府] 가흥은 부()의 이름으로 절강성(浙江省)에 속해 있었다. 지부(知府)는 관명으로 부의 장관(長官)이다. 송대(宋代)에 부()에 지사(知事)를 두었는데 지부의 명칭이 이때부터 비롯되었으며, () 때에 비로소 부()마다 지부 1인을 정하였다. 지현(知縣지주(知州)의 명칭도 있다.

가흥창[可興倉] 충북 중원군 가금면(可金面) 가흥리 남한강변에 있었던 조선 시대의 조창(漕倉)이다. 1465(세조11)에 설치되어 개항 전까지 존속하였다. 이곳에 수납된 세곡은 남한강 수로를 통해 서울의 용산창까지 운송하였다. 금천면의 금천강(金遷江) 서안에 있었던 고려 시대 덕흥창(德興倉)의 후신으로, 조선 초기에는 경원창(慶原倉)이라 불렀다. 세종 때에 다시 덕흥창이라 개칭했고, 세조 때 창고를 가흥역(嘉興驛) 근처로 옮기고 가흥창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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