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덕촌看德邨, , 간도懇到, 간도주지間道奏之, 간독竿牘, 간독삼천簡牘三千

간덕촌[看德邨] ()나라의 유민(遺民)이 살던 곳. 1644년 명나라가 멸망하였을 때와 한족(漢族)의 재건 국가인 남명(南明)이 망한 1661년 이후 두 차례에 걸쳐 명나라의 유민들이 조선으로 피난해 왔는데, 조정에서 이들을 받아들여 거제부(巨濟府) 간덕촌(看德邨)에서 함께 살게 하였다.

간도[懇到] 논어(論語) 자로(子路) 28장의 집주에 호씨(胡氏)절절은 간곡하고 지극함이다.[切切, 懇到也.]”라고 하였다.

간도[澗道] 산골짜기 시냇길. 계곡을 흐르는 물을 따라 나 있는 길을 가리킨다. ()나라 두보(杜甫)의 시 제장씨은거(題張氏隱居) 첫째 수에 봄 산을 짝도 없이 홀로 찾아가는데, 나무 찍는 소리만 쩡쩡 들리니 산은 더욱 조용하네. 계곡 길에 추위가 남아 얼음과 눈을 밟으며 지나, 석문산에 해가 비스듬할 때에야 숲 언덕에 도달하였네.[春山無伴獨相求 代木丁丁山更幽 澗道餘寒歷冰雪 石門斜日到林丘]”라고 하였다

간도[間道] 샛길. 지름길. 도피로.

간도주지[間道奏之] 샛길로 가서 보고함을 이른다. 통감절요(通鑑節要) 당기(唐紀)평원태수(平原太守) 안진경(顔眞卿)은 안록산(安祿山)이 장차 배반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장마로 인해 성을 완전히 보수하고 참호를 깊이 파고 장정을 헤아려서 배치하고 창고를 충실하게 하였다. 안록산(安祿山)은 그를 일개 서생(書生)이라 여겨 하찮게 대하였는데, 안록산(安祿山)이 배반하자 안진경(顔眞卿)에게 통첩을 보내어 평원(平原)과 박평(博平)에 있는 7천 명의 병력으로 하수(河水)의 나루를 막게 하였다. 안진경(顔眞卿)이 평원사병(平原司兵) 이평(李平)을 보내어 샛길로 가서 이 사실을 아뢰었다.[平原太守顔眞卿, 知祿山且反, 因霖雨, 完城浚濠, 料丁壯, 實倉廩. 祿山以其書生易之 及祿山反牒 眞卿以平原, 博平兵七千人, 防河津. 眞卿遣平原司兵李平, 間道奏之.]”라고 한 데서 보인다.

간독[簡牘] 편지(便紙). 옛날 종이가 보급(普及)되기 전에 글을 쓰기 위하여 사용(使用)되었던 대쪽과 얇은 나무쪽에서 유래(由來)하였다.

간독[竿牘] 긴 상소문. 편지. 서간. 옛날에 글자를 적는 데 쓰인 대나무 조각과 나뭇조각. 장자(莊子) 열어구(列禦寇)하찮은 사람들은 그저 예물이나 서신 따위에나 열중하면서 천박한 일에 정신을 소모시킨다.[小夫之知 不離苞苴竿牘 敝精神乎蹇淺]”라고 하였다.

간독삼천[簡牘三千] 사기(史記) 126 골계열전(滑稽列傳), 동방삭(東方朔)이 처음 장안에 들어와 공거(公車)에 이르러서 무려 3000()이나 되는 엄청난 양의 주문(奏文)을 올려 임용해 주기를 청했는데, 한 무제(漢武帝)가 그 상소를 읽느라 무려 두 달이나 걸렸다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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