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저刻楮, 각저角抵, 각저角觝, 각저刻著, 각저脚底

각저[刻楮] 닥나무 잎을 조각하여 만듦. 한비자(韓非子) 유로(喻老)춘추 시대 송()나라 사람 중에 자기 임금을 위해 상아(象牙)로 닥나무 잎을 조각하여 만드는 자가 있었는데, 3년이나 걸려 완성하였다. 굵고 가는 줄기나 뾰족한 잎의 광택이 모두 닥나무와 흡사하여 이것을 닥나무 잎 가운데 섞어놓아도 구분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宋人有爲其君以象爲楮葉者, 三年而成. 豐殺莖柯, 毫芒繁澤, 亂之楮葉之中而不可別也.]”라고 한 이야기가 보인다. 후에 이를 각저(刻楮)라 하여 기예가 매우 공교하거나 학문을 하는 데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비유하게 되었다.

각저[角抵] 진한(秦漢)시대 일종의 기예표연(技藝表演)이다. 대체로 현 시대의 공중제비 기예와 비슷하다. 한서·무제기에 원봉(元封) 3년 봄, 각저희를 만들었다라는 말이 보이고, 안사고(顔師古)가 주를 단 응소(應劭)에서 말하길 ()은 겨루는 것이고, ()는 부딪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전국시대(戰國時代)로부터 내려온다. ()나라 때에 각저라 칭하였는데 한서·형법지에 보인다. 송원시대에는 상복(相扑) 또는 쟁교(爭交)라 칭했다. 이는 남송(南宋) 오자목(吳自牧)의 몽량록(夢梁錄))에 보인다. 한나라 때에는 각종 악무잡기(樂舞雜技)를 각저희(角抵戱)라 칭했다. 동한(東漢) 장형(張衡)의 서경부(西京賦)너른 광장에서 각저의 묘기를 보았다라고 하였다. 후에 각저는 백희(百戱)와 통용되어 쓰인다.

각저[角觝] 각저(角觝)는 두 사람이 맞붙어 힘을 겨루는 씨름의 일종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이사열전(李斯列傳)이때 진()나라 이세(二世) 황제가 감천(甘泉)에서 배우(優俳)들의 각저를 관람했다.[秦二世在甘泉宮作樂角觝.]”는 기록이 있다.

각저[角觝] 힘이나 기예, 사어(射御) 등을 겨루는 일. 후에는 씨름을 이른다. 각력희(角力戱).

각저[刻著] 각저(刻着). 새겨짐. 명심함. 굳게 세기다. 새겨져 있다. 마음에 명기하다. 명심하다. 굴원(屈原) 비회풍(悲回風)개차추가 계신 곳을 이리저리 찾다가, 백이와 숙제 숨어살던 자취를 밟아본다. 두 분의 끼친 뜻을 새겨 두고 저버리지 못함은 그 뜻을 새겨갈 마음이 없어서라네.[求介子之所存兮 見伯夷之放跡 心調度而弗去兮 刻著志之無適]”라고 하였다.

각저[脚底] 발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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