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서角黍, 각서위어함입수刻犀爲魚銜入水, 각서풍영角犀豐盈, 각석륵공刻石勒功

각서[角黍] 각서(角黍)는 단오(端午)에 먹는 절식(節食)으로 떡의 일종이다. 중국 남방의 풍속에는 단오일(端午日)에 각서(角黍)를 만드는데, 고엽(菰葉)에다 찹쌀을 싸서 익힌다. 또 오색(五色)실을 길게 이어 감아서 장명루(長命縷)라 하고 서로 선사한다. 다른 이름으로 추(), (), (), 칭추(稱鎚), 또는 구자(九子)라고 부른다. 풍토기(風土記)에 의하면 줄풀[菰葉]의 잎으로 찹쌀을 싸고, 거기에 밤과 대추 등을 넣고 쪄서 만든다고 한다. 또 지방에 따라 살진 거북을 쪄서 껍질과 뼈를 발라내고 마늘과 여뀌 등을 넣어 만든 조귀점미(俎龜粘米)라는 각서를 만들기도 한다고 한다. <歲時雜記, 續齊諧記, 荊楚歲時記>

각서[角黍] 각서는 고엽(菰葉)에 찹쌀을 싸서 찌는 떡으로 편수와 비슷한데, 삼각뿔 모양으로 만들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각반(角飯)이라고도 한다. ()나라 사람들이 55일에 멱라수(汨羅水)에 투신하여 자결한 굴원(屈原)의 죽음을 슬퍼하며, 55일에 굴원(屈原)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대통에 쌀을 담아 멱라수(汨羅水)에 던졌던 데에서 유래하여, 단오절마다 이 떡을 만들어 먹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風土記> ()나라 오균(吳均)의 속제해기(續齊諧記)굴원(屈原)55일에 스스로 멱라수에 빠져 죽었는데, ()나라 사람들이 그를 불쌍히 여겨 매양 이날이 돌아오면 대통에다 쌀을 넣어 물에 던지고 제사를 지냈다.[屈原五月五日投汩羅而死, 楚人哀之, 每至此日, 竹筒貯米, 投水祭之.]”라고 하였다.

각서위어함입수 수개삼척[刻犀爲魚銜入水 水開三尺] 포박자(抱朴子)물소 뿔에다 고기 모양을 새겨서 입에 물고 물속에 들어가면 물길이 석 자쯤 열린다.[刻犀爲魚銜入水 水開三尺]”고 하였다. 또, 연감유함(淵鑑類函) 430 ()물 소 뿔 한 자 이상짜리를 구해서 거기에 물고기 모양을 새긴 다음 입에다 물고 물속에 들어가면, 항상 사방 석 자 정도로 물길이 트이기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있다.[得其角一尺以上 刻爲魚 而銜以入水 水上爲開方三尺 可得息氣]”는 포박자(抱朴子)의 글이 인용되어 있다.

각서풍영[角犀豐盈] 짱구에다 풍만한 모습. 각서(角犀)는 이마가 코뿔소가 엎어져 있는 듯 튀어나온 모습을 이르고, 풍영(豐盈)은 아래턱이 풍만한 모습이니 총명하고 위풍 있는 모습을 뜻한다. 모두 현명한 자의 얼굴상이다. 국어(鄭語) 정어(鄭語)지금 왕께서는 고명(高明)하고 높은 덕을 가진 신하를 버리고, 참소하고 간특하며 어리석은 신하를 좋아하며, 이마가 훤칠하게 생기고 턱이 관후한 어진 신하는 미워하고, 우악스럽고 더없이 비루한 신하는 가까이하고 있습니다.[今王 棄高明昭顯 而好讒慝暗昧 惡角犀豐盈 而近頑童窮固]”라고 한 데서 보인다. 참고로, 완동궁고(頑童窮固)의 완동(頑童)은 아이처럼 어리석은 것이고, 궁고(窮固)는 구차하고 비루함이니, 모두 어둡고 몹시 비루하여 덕의(德義)를 알지 못하는 자이다.

각석륵공[刻石勒功] 비석에 공적을 새김을 이른다. 후한서(後漢書) 두헌전(竇憲傳)두헌이 거기장군이 되어 선우를 크게 격파하고 연연산에 올라 그 공을 돌에 새겼다.[乃拜憲車騎將軍 大破單于 遂登燕然山 刻石勒功]”는 기록이 보인다. 때는 후한(後漢) 화제(和帝) 영원(永元) 원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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