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백葛伯, 갈백구향葛伯仇餉, 갈벽葛薜

갈백[葛伯] 갈백(葛伯)은 하()나라 갈국(葛國)의 제후(諸侯)이다. 갈백이 무도하여 제사를 지내지 않으므로 탕왕(湯王)이 사람을 시켜 물어보았더니, 희생(犧牲)이 없다고 하였다. 탕왕(湯王)이 소와 양을 보내주었더니 갈백은 먹어버리고 또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는 고사가 있다. 결국 탕()에게 멸망당하였다. 맹자(孟子) 등문공 하(滕文公下)탕왕(湯王)이 박읍(亳邑)에 도읍하고 있을 때 갈()나라와 이웃하였는데, 갈나라 임금이 방탕하여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탕왕이 사람을 보내시어 묻기를 무엇 때문에 제사를 지내지 않는가?’라고 하니, 갈나라 임금이 제사에 바칠 희생(犧牲)이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탕왕이 사람을 시켜 소와 양을 보내주게 하였는데, 갈나라 임금이 이것을 잡아먹고는 또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탕왕이 또 사람을 시켜 무엇 때문에 제사를 지내지 않는가?’라고 하니, 갈나라 임금이 제사에 바칠 곡식이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탕왕이 박읍의 백성들로 하여금 갈나라에 가서 밭을 갈아주게 하니, 노약자들이 밥을 내다 먹였다. 그런데 갈나라 임금이 자기 백성을 거느리고 가서 술과 밥을 내온 자들을 가로막고 빼앗되 순순히 주지 않는 자는 죽였다. 기장밥과 고기를 들밥으로 내온 아이가 있었는데, 갈나라 임금이 그 아이를 죽이고 빼앗았다. 서경(書經) 중훼지고(仲虺之誥)에 이르기를 갈나라 임금이 들밥을 내온 자를 원수로 여겼다.[葛伯仇餉]고 하였으니, 이것을 말한 것이다. 탕왕이 갈나라 임금이 이 어린아이를 죽였기 때문에 갈나라를 정벌하였는데, 온 천하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탕왕께서 천하를 탐내서가 아니라 일반 남녀 백성들을 위하여 복수(復讐)해주신 것이다.’라고 하였다.[湯居亳, 與葛為鄰. 葛伯放而不祀. 湯使人問之曰: 何為不祀? : 無以供犧牲也. 湯使遺之牛羊; 葛伯食之, 又不以祀. 湯又使人問之曰: 何為不祀? : 無以供粢盛也. 湯使亳眾, 往為之耕, 老弱饋食. 葛伯率其民, 要其有酒食黍稻者, 奪之; 不授者, 殺之. 有童子以黍肉餉, 殺而奪之. 書曰: 葛伯仇餉. 此之謂也. 為其殺是童子而征之, 四海之內皆曰: 非富天下也, 為匹夫匹婦復讎也.]”라고 하였다.

갈백구향[葛伯仇餉] ()나라 임금이 밥을 내가는 사람들을 원수로 삼음. 갈백(葛伯)은 하()나라 때의 방종하고 무도한 제후이다. 구향(仇餉)은 밥 먹이러 온 자를 원수로 여겼다는 말로, 갈백이 제물(祭物)로 쓸 곡식이 없다는 이유로 제사를 지내지 않자, 탕왕(湯王)이 자기 백성들을 보내어 밭을 갈아주게 하였는데, 노약자들이 그들에게 밥을 내다 먹이자 갈백이 자기 무리들을 거느리고 가서 밥을 날라다 주던 동자(童子)를 죽이고 밥을 빼앗아 먹었던 일을 가리킨다. 본래 서경(書經) 중훼지고(仲虺之誥)에 나오는 말인데, 맹자(孟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맹자의 해설이 자세하게 실려 있다.

갈벽[葛薜] 지명(地名). ()나라 땅. 갈벽(葛薜)은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비향현(肥鄕縣) 서남, 음성(陰成)으로 보기도 한다. ()은 설()로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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