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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홍일전 이해추병[葛洪一箭 已解追兵] 안씨가훈(顔氏家訓) 잡예(雜藝)하북(河北)의 문사(文士)들은 다들 군사적인 활쏘기를 잘 알아서, 갈홍(葛洪)이 화살 하나로 추격병을 따돌렸을 뿐만 아니라, 삼공(三公)과 구경(九卿)이 모인 연회에서도 늘 영예와 상을 나눈다.[河北文士, 率曉兵射, 非直葛洪一箭, 已解追兵, 三九讌集, 常縻榮賜.]”라고 한 데서 보인다. 참고로 갈홍(葛洪)의 포박자(抱朴子) 자서(自敍)옛날 군대에 있을 때 쫓아오는 기병을 활로 쏜 적이 있었는데, 시위가 울리자마자 자빠져 적 둘과 말 한 필을 죽임으로써, 마침내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昔在軍旅, 曾手射追騎, 應弦而倒, 殺二賊一馬, 遂以得免死.]”라고 하였다

갈홍자원[葛洪字苑] 갈홍(葛洪)의 요용자원(要用字苑)을 이른다. 안씨가훈(顔氏家訓) 서증(書證) 고전고증(古典考證)()나라 때 갈홍(葛洪)의 자원(字苑)에 이르러 비로소 곁에 ()자를 더하면서 독음(讀音)도 어경(於景)의 반절음()이 된 것인데, 세간에서 바로 상서(尙書), 주례(周禮), 장자(莊子), 맹자(孟子)의 사례까지 고쳐 갈홍(葛洪)의 글자를 따른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至晉世葛洪字苑傍始加彡, 音於景反. 而世間輒改治尙書·周禮··孟從葛洪字, 甚爲失矣.]”라고 한 데서 보인다. 진서(晉書) 갈홍전(葛洪傳)이나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 어디에도 갈홍(葛洪)이 요용자원(要用字苑)을 지었다는 기록이 없으며, 양서(梁書) 유묘전(劉杳傳)에서 일찍이 이 책을 인용한 적이 있을 뿐이다. 신당서(新唐書)와 구당서(舊唐書)에는 똑같이 갈홍(葛洪)의 요용자원(要用字苑) 1권이 기록되어 있다.

갈홍이방중니[葛洪以方仲尼] 안씨가훈(顔氏家訓) 문장(文章)에 양웅(揚雄)을 논하면서 환담(桓譚)은 그를 노자(老子)보다 낫다고 여겼고 갈홍(葛洪)은 그를 중니(仲尼)에 견주었으니, 한숨이 나오게 만든다.[桓譚以勝老子, 葛洪以方仲尼, 使人歎息.]”라고 한 데서 보인다. 진서(晉書) 갈홍전(葛洪傳)에서 갈홍(葛洪)은 자()가 치천(稚川)이고 단양(丹陽) 구용(句容) 사람이다. 자호(自號)를 포박자(抱朴子)라 하였는데, 이를 책 이름으로 삼았다.”라 하였다. 이 책의 상박(尙博) 편에서 세상에서 다들 오래된 옛날은 신비하고 귀하게 여기고, 동시대의 것은 업신여기고 천하게 여기니, 비록 세상에 유익한 책이라 할지라도 전대에서 전해진 글만 못하다고 한다. 그래서 중니(仲尼)는 당시에 존중받지 못했고, 태현경(太玄經)도 동시대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했다.”라고 하였다. , 포박자(抱朴子) 오실(吳失) 편에서 공자(孔子), 묵자(墨子)의 도()가 예전에는 시행된 적이 없었고, 맹가(孟軻)와 양웅(揚雄) 역시 곤경에 처하였으니, 덕이 있어도 때를 만나지 못함은 본래 그 유래가 있다.”라고 하였다.

갈홍천[葛洪川] 갈홍천(葛洪川)은 중국 절강성(浙江省) 항주(杭州)의 천축사(天竺寺) 부근에 있는 시내이다. ()나라 때 이원(李源)이 일찍이 낙양(洛陽) 혜림사(惠林寺)에 있을 적에 승() 원택(圓澤)과 매우 친밀하게 지냈는데, 하루는 둘이 배를 타고 남포(南浦)에 놀러 갔다가, 비단 배자를 입고 물을 긷는 한 부인(婦人)을 보고는 원택이 울면서 이원에게 말하기를 저 부인이 임신한 지 3년이 되었는데, 내가 의당 그의 아들이 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2년 뒤의 중추일(中秋日) 달밤에 항주(杭州) 천축사(天竺寺) 뒤에서 공()과 다시 만나기로 하자.”라고 하고, 원택은 그날 밤에 과연 죽었고, 그 부인은 과연 그날 아이를 낳았다. 이원이 그로부터 12년 뒤에 과연 그곳을 찾아가 보니, 갈홍천(葛洪川) 가에서 한 목동(牧童)이 소뿔을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나는 삼생석 위의 그 옛날 정혼이거니, 음풍농월하는 건 굳이 논할 것도 없네. 친한 벗이 멀리 찾아 주매 진정 부끄럽지만, 이 몸은 달라졌으나 본성은 그대로 있다오.[三生石上舊精魂 賞月吟風不要論 慚愧情人遠相訪 此身雖異性長存]”라고 하여, 서로 친구였음을 확인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인데, 삼생석(三生石)은 곧 이원과 중 원택이 재회(再會)했던 곳의 돌을 가리키고, 갈홍천(葛洪川)은 그곳의 지명이다. 참고로, 갈홍(葛洪)은 동진(東晉) 때 사람으로 처음에는 유가(儒家)를 공부하다가 나중에 신선술(神仙術)에 몰두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갈활[葛越] ()은 갈포이고, ()은 부들자리 또는 모시이다. 서경(書經) 우공(禹貢)섬오랑캐는 훼복을 입는다.[島夷 卉服]”라고 하였고, 그 주에 훼는 풀이니 갈포와 부들로 짠 베와 목면 등속이다.[卉 草也 葛越木綿之屬]”라고 하였다.

갈회지민[葛懷之民] 아무 욕심 없이 태평 시대의 한가로움을 누리는 자신을 비유한 말이다. 도잠(陶潛)의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술을 실컷 마시고 시를 지어서 자신의 뜻을 즐기니, 무회씨의 백성인가, 갈천씨의 백성인가?[酣觴賦詩 以樂其志 無懷氏之民歟 葛天氏之民歟]”라고 한 것을 인용한 표현이다.

갈후[竭涸] 말라서 물이 없어지다. 갈학(竭涸). 갈호(竭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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