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賈婆, 가파쇄마加把刷馬, 가파채미歌罷采薇, 가판歌板, 가평嘉平, 가폐嘉肺
❍ 가파[賈婆] 가충(賈充)의 딸로 진 혜제(晉惠帝)의 황후인 가남풍(賈南風)을 이른다. 진서(晉書)에 혜제의 부친인 진무제(晉武帝) 사마염(司馬炎)이 가남풍에 대해 “못생기고 키도 작고 얼굴빛이 검다.[醜而短黑추이단흑]”라고 하였다. 또한, 품행이 음란하고 포악하여 태의령(太醫令) 정거(程據) 등과 사통하였고, 연소배들을 대나무 상자에 넣어 궁중으로 실어 날라 음행을 저지르다가 일이 발각될까 염려하여 모두 죽여 버렸다. <資治通鑑 卷83 晉紀5 孝惠皇帝上之下>
❍ 가파쇄마[加把刷馬] 원래 정해진 숫자에 보태어 늘어난 쇄마를 이른다. 쇄마(刷馬)는 조선시대 지방에 갖추었던 관용의 말이다. 외관(外官)의 영송(迎送)이나 조사(詔使, 사신)의 방물(方物) 등을 수송하는 데 쓰였다. 주로 삯을 주고 민간의 말을 사용하였으며 계(契)를 만들어 공급에 대비하였다.
❍ 가파채미[歌罷采薇] 고사리 캐는 노래를 마침.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수양산(首陽山)에 고사리를 캐먹으며 숨어살다 굶어 죽게 되었을 때에 “저기 저 서산에 올라, 고사리를 캐세그려. 포악으로 포악을 바꾸고도, 그릇됨을 모르는구나. 신농씨, 당우씨, 하후씨 홀연 사라졌으니, 우린 누구에게 의지한단 말인가. 아 가는구나, 명이 다 되었도다.[登彼西山兮, 采其薇矣. 以暴易暴兮, 不知其非矣. 神農虞夏忽焉沒兮, 我安適歸矣. 于嗟徂兮, 命之衰矣.]”라고 노래하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61 伯夷列傳>
❍ 가판[歌板] 옛날에 노래할 때 박자를 맞추기 위해 나무로 만들어 두드리는 악기로 박판(拍板)이라고도 한다. 박달나무로 만든 것을 단판(檀板)이라 한다.
❍ 가편추[加鞭箠]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더하다. 더 빠르게 하기 위해 힘쓰는 것을 가리킨다.
❍ 가평[嘉平] 경기도 가평(加平)의 옛 이름이다.
❍ 가평[嘉平] 섣달의 제사 또는 섣달. 12월에 지내는 제사인 납제(臘祭)의 별칭(別稱)인데, 12월인 납월(臘月)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사기(史記) 권6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31년 12월에 납(臘)의 이름을 고쳐서 가평이라고 하였다.”라고 나온다. 섣달 제사의 명칭이 삼대에 각기 달랐는데 하(夏) 나라는 가평(嘉平), 은(殷) 나라는 청사(淸祀), 주(周) 나라는 대사(大蜡)였다. <世說新語 德行>
❍ 가평관[嘉平館] 평안도 가산(嘉山)에 있는 역관이다.
❍ 가평일[嘉平日] 음력 12월 납일(臘日)의 이칭(異稱)이다.
❍ 가폐[嘉肺] 가석(嘉石)과 폐석(肺石)을 말한다. 주례(周禮) 추관(秋官) 대사구(大司寇)에 의하면, 가석(嘉石)은 무늬 있는 돌로, 경미한 죄를 지은 자를 이 가석에 앉혀 놓고 허물을 고치도록 하는 것이고, 폐석(肺石)은 백성이 억울한 사실을 글로 적어서 임금에게 올린 것을 전달하지 않은 관장(官長)이 있으면, 그 백성을 이 폐석에다 올려 세우고 그 말을 들은 다음, 왕에게 고하여 그 관장을 치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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