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삭家削, 가산假山, 가산賈山, 가삽삼만축架揷三萬軸

가삭[家削] 국도(國都)에서 3백 리 안에 있는 대부(大夫)의 채지(采地)를 말한다. <周禮 天官 大宰>

가삭[家削] 대부(大夫)의 채지(采地)와 공읍(公邑)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국도(國都)에서 2백 리 밖부터 3백 리 사이에 있다.

가산[賈山] 전한(前漢) 때의 인물로, 문제(文帝)가 백성들이 사사로이 돈을 주조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령인 도주전령(盜鑄錢令)을 폐지하자 가산이 글을 올려 강력히 반대하였는데, 그 말이 매우 격절(激切)하여 문제가 끝내 처벌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漢書 卷51 賈山傳>

가산[賈山] ()나라 영천(穎川) 사람이다. 서사(書史)에 매우 통()하였다. 효문제(孝文帝) 때에 치란(治亂)의 도()를 진()을 빌려 지어 올린 지언(至言)임금이 언로를 열고 간언을 구할 때에 얼굴색을 온화하게 하고 받아들이더라도 선비들은 오히려 두려워서 감히 다 말하지 못합니다. 더구나 위엄으로써 떨게 하고 권세로써 억누른다면 비록 요() 임금과 순() 임금 같은 지혜와 맹분(孟賁) 같은 용맹이 있더라도 어찌 꺾이지 않는 자가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漢書 卷51 賈山傳>

가산[賈山] 가산은 한()나라 영천(穎川) 사람으로 한 문제(漢文帝)의 문관이다. 문제에게 진()나라를 비유로 들어 치란(治亂)에 대해 설명한 지언(至言)이라는 글을 남겼다. 그 글에 신이 들으니, ‘산동의 관리가 조령(詔令)을 포고하자 늙고 병든 백성들까지 지팡이를 짚고 나와 듣고는 잠시라도 죽지 않고 살아서 덕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싶어 했다.’라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즉 윤음의 내용이 진실하여 백성들이 덕화에 감화될 것이니, 신하가 대신 지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漢書 卷51 賈鄒枚路傳 賈山>

가산[家山] 가향(家鄕). 고향(故鄕). 한 집안의 묘지.

가산[假山] 기괴하게 생긴 돌이나 나무에 인공(人工)을 가하여 만든 작은 산을 이른다. 고인(古人)들은 원림(園林)이나 정원(庭院) 가운데 이것을 만들어 두고 관상용으로 삼았다. 사기(史記) 12권 효무본기(孝武本紀)한 무제(漢武帝)가 태액지(太液池)에다 삼신산(三神山)을 축조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가산(假山)이다. 나무로 만든 것을 목가산(木假山), 돌로 만든 것을 석가산(石假山)이라 한다.

가삽삼만축[架揷三萬軸] 삼만 축()은 곧 3만 두루마리란 뜻으로 아주 많은 장서를 이르는바, 한유(韓愈)의 송제갈각왕수주독서(送諸葛覺往隨州讀書) 시에 업후의 집에는 서책이 하 많아서, 서가에 삼만 두루마리가 꽂혀 있고, 하나하나 상아 찌를 달아 놓았는데, 손도 안 댄 것처럼 깨끗하다네.[鄴侯家多書 架揷三萬軸 一一懸牙籤 新若手未觸]”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韓昌黎集 卷7> 업후(鄴侯)는 당 덕종(唐德宗) 연간에 벼슬이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에 이르고 업현후(鄴縣侯)에 봉해진 이필(李泌)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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