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곤懇悃, 간공諫工, 간공簡公
❍ 간곤[懇悃] 간절한 충성이다. 한유(韓愈) 논불골표(論佛骨表) 말미(末尾)에 “가령 부처가 영험(靈驗)하여 재화(災禍)를 만들 수 있다면 모든 재앙(災殃)이 응당 신의 몸에 이를 것입니다. 하늘이 밝게 굽어보시니 신은 원망도 후회도 하지 않겠습니다. 격렬한 감정과 간절한 충성을 견딜 수 없어 삼가 이 표문을 올려 아뢰나이다.[佛如有靈, 能作禍祟, 凡有殃咎, 宜加臣身, 上天鑑臨, 臣不怨悔. 無任感激, 懇悃之至, 謹奉表以聞.]”라고 한 데서 보인다.
❍ 간공[諫工] 간관(諫官)을 이른다. 국어(國語) 정어(鄭語) 사백위환공논흥쇠(史伯爲桓公論興衰)에 “선왕(先王)은 왕후를 이성(異姓)의 집안에서 맞이해 오고 재물을 구하는 데에 일정한 지역이 있었으며 신하를 뽑으면서는 간관(諫官)을 취하여 많은 일들을 바로잡게 하니, 조화(調和)와 뇌동(雷同)을 구별하여 조화에 힘쓴 것입니다.[於是乎先王, 聘后於異姓, 求財於有方, 擇臣取諫工, 而講以多物, 務和同也.]”라고 한 데서 보인다.
❍ 간공[簡公] 춘추시대(春秋時代) 제 도공(齊悼公)의 아들로 이름은 임(壬)이다. 환공(桓公)으로 부터 11대 임금이다. 도공(悼公)이 시해된 뒤 신하들이 함께 옹립하여 제군(齊君)이 되었으나 뒤에 전상(田常)에게 시해당하였다. 제(齊)나라는 간공(簡公)에 이르러 혼란이 극심하였다. 도공(悼公)을 이어 즉위한 간공(簡公)은 여러 경(卿) 중에 가장 세력이 컸던 전성(田成)과 자신이 총애하던 감지(監止: 감지闞止·闞史감사)를 좌우의 재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두 재상 사이에 권력투쟁이 일어나 전성자(田成子)는 간공(簡公)을 감금하고 감지 일당을 없앤 후 마침내 간공(簡公)까지 죽이고 간공(簡公)의 동생 평공(平公)을 왕으로 앉혔다.
❍ 간공[簡公] 춘추시대 정(鄭)나라 군주로, 이름은 가(嘉)이다. 즉위 초에 여러 공자(公子)의 정변(政變)과 진(晉)·초(楚)의 침공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웠으나 자산(子産)을 중용하여 국가의 안정을 이루었다. <春秋左氏傳 襄公, 昭公> <史記 鄭世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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